임원 이상은 직급 그대로 유지…'반쪽짜리 제도' 비판
(서울=포커스뉴스) "우리나라에서 수평적인 마인드로 직장생활 하기는 힘들죠. 실력대로 연봉을 올려준다고 해도 직책이 명확해야 자기 역할에 책임감도 들 테고요."-3년차 영업사원 김모(29)씨.
"전기 설비를 관리하는 업무라 언제든 사고발생 위험이 있습니다. 직급체계가 있어야 어느 정도 긴장이 유지된다고 생각해요."-2년차 설비엔지니어 박모(30)씨.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가 임직원 간 호칭을 '○○○님'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인사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직급폐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창의적·수평적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직급폐지는 2000년 CJ그룹이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이후 정보기술(IT)업계를 중심으로 유통업계, 제조업계까지 직급폐지를 시도하는 추세다.
그러나 사회 각 분야에서는 직급폐지가 보여주기식 조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무상 실효성이 없는 데다 임원 이상 간부의 직책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님' 호칭을 통해 직급폐지를 시행 중인 일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서 차장급으로 근무 중인 A(40)씨는 "시행 초기 의식적으로 ○○○님을 부르려는 분위기가 있기도 했지만 한 달 정도 지나고서부터 서서히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팀 내에서는 팀장, 대리 등 직급으로 부르고 계열사나 외부 사람들 앞에서만 ○○○님이라고 부른다"며 "이전보다 불리는 이름이 늘어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업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는 B(33‧여‧대리급)씨 역시 직급폐지를 '반쪽자리 제도'라고 비판했다. B씨는 "사원급과 부장급을 연차와 나이 정도로 따져보면 20년 정도 차이나지만 부장급과 임원 차이는 10년 안팎에 불과하다"며 "임원급을 제외하고 직급폐지를 도입한 것 자체가 본래 취지를 망가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안전에 주의가 필요한 업계의 경우 직급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3년차 생산관리엔지니어인 이모(28)씨의 업무는 3교대(1·2·3조)로 운영되고 있다. 근무시간이 8시간으로 제한돼 초과근무 우려는 없지만 조가 바뀔 때마다 신체적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이씨는 안전을 위해서 선임자와 후임자 사이에 위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아직까지 직급으로 후임자들을 찍어 누르는 선임자는 없었다"며 "오히려 선임자에 대한 긴장 때문에 그동안 사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KT는 직급제를 폐지했다가 2014년 다시 부활시키기까지 했다. 직원들의 승진 의욕이 떨어지면서 기업 전반적으로 생산성이 저하됐기 때문이다. 당시 KT 인재경영실장은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직급제 재도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1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6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51.7%에 달하는 직장인들이 직급폐지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혼란스럽다'는 의견이 34.9%로 가장 많았고 '회사 외부인과 소통할 때 불편하다(32.5%)', '사원 간 업무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24.1%)'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직급폐지의 목적에 '의사결정 배분'이 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연차가 낮은 직원에게도 의사결정 권한을 나눠줘야 직급폐지가 제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직급만 없앴을 뿐 여전히 결정 방식이 수직적이라면 '보여주기용'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직급을 없앤 '팀제'가 유행하고 이를 토대로 성과를 냈던 사례들을 본다면 연차가 낮은 직원에게도 의사결정 권한을 나눠주는 방식의 직급폐지는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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