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 대구'부터 '나락 신안'까지…도넘은 인터넷 '지역혐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6-14 0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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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 대구·마계 인천·라쿤 광주 등 근거없는 신조어 계속 탄생

여교사 성폭행 사건 발생한 신안도 '나락' 등 지역비하 쏟아져

전문가 "본류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부정적인 반응 나와" 지적
△ [그래픽] 광주, 20대 국회의원선거 당선자 현황

(서울=포커스뉴스) '고담 대구', '마계 인천', '라쿤 광주' 등 인터넷상에서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와 이웃들이 20대 여교사를 성폭행한 사건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인터넷상에 쏟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일부 사건만으로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파생되는 지역적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 각종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비난과 조롱에 아무렇게나 섞여 유포되는 경우도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 황당한 사건들이 불러온 별명 '고담 대구'

'고담시티'는 미국 출판사 DC 코믹스의 시리즈 중 '배트맨'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범죄가 벌어지는 곳으로 그려진다.

대구가 고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진 유래에 대해서는 각종 추측이 가능하지만 대체로 지난 2005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사건사고 갤러리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고담이 대구의 별명이 된 데는 당시 대구에 전국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사건·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이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로도 불리우는 이 사건은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지하 3층 승강장에 정차한 안심방향 1079호 전동차 내부에서 50대 남성이 시도한 방화 사건으로 맞은편에 진입한 1080호 전동차와 역사 전체로 불이 번져 대규모 인명피해 발생했다.

이 화재로 343명의 사상자(사망 192명)가 발생했고 정부는 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건·사고 속에 '수영장에서 인분이 발견돼 소동이 벌어졌다'라는 내용의 기사 등 황당한 사건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도 대구가 고담이라고 불리워지는데 한 몫을 거뒀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색과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대구의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변색돼 이를 비하하는 별명이 탄생한 것으로도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각종 통계에서 보여지는 대구의 모습은 고담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2015년 지역안전등급'을 살펴보면 화재·교통사고·자연재해 등 7개 분야 중 범죄 분야 안전등급에서 대구는 3등급을 받았다.

범죄 분야 안전등급은 5대 강력범죄 발생건수, 경찰관서수, 인구수 등을 종합해 산출되는 지수로 전국 8개 특별·광역시 중 대구보다 낮은 등급을 받은 곳은 서울(4등급), 부산(4등급), 광주(5등급) 등 3곳에 달했다.

또 같은 등급을 받은 대전까지 고려하면 대구는 사실상 중위권의 범죄 분야 안전등급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군·구별로 봤을 때도 대구의 달성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체 7개 분야 중 6개 분야에서 1등급을 받았다.

대구 시민들이 인터넷상에서 계속 사용되는 '고담 대구'라는 말과 글에 화를 내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김지원(31)씨는 "처음에 고담 대구라는 말을 듣고 피식 웃고 넘겼지만 듣다보면 화가 날 때도 많다"며 "단순히 놀리는 게 아니라 대구 사람 모두를 비하하는 것 같아 듣기 거북하다"고 말했다.

◆ 날씨 때문에 억울하게 붙은 별명 '마계 인천'

인천도 지역혐오가 담긴 별명이 붙은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지난 2009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5차전이 열렸던 문학경기장에서 구름이 잔뜩 끼고 번개가 치자 일부 야구팬들이 장난삼아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의 별명은 바로 악마의 소굴을 뜻하는 '마계'이다.

또 대구와 마찬가지로 각종 강력범죄와 차이나타운 등 특유의 지역색이 도시 이미지에 겹쳐지면서 이미 인터넷상에서 인천을 비하하는 별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유명 웹툰 '프리드로우' 50화에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마계로 알려져 있다는 무시무시한 도시 인천'이라는 내용이 만화와 글로 고스란히 표현됐을 정도다.


그러나 인천이 악마의 소굴처럼 비난받을 근거는 사실상 없다.

인천은 오히려 타지역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안전한 도시로 꼽힐 정도다.

국민안전처 '2015년 지역안전등급'에서 인천은 7개 분야 중 6개 분야 안전등급에서 2~3등급을 받았다.

범죄 분야 안전등급은 대구보다도 높은 2등급을 받아 1등급을 받은 세종시의 뒤를 이었고 시·군·구별 안전등급에서 인천 옹진군은 4개 분야 1등급을 기록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신해인(27·여)씨는 "타지역 친구들을 만나면 매번 마계에서 왔다고 놀림을 당해 화가 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며 "인천에 사는 것이 죄도 아니고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지역감정이 불러온 잘못된 별명 '라쿤 광주'

비디오 게임 '바이오하자드'에서 좀비들이 넘쳐나는 가공의 도시인 '라쿤시티'는 광주를 비하하는 별명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게임에서 라쿤시티는 국가로부터 최후에 핵폭탄을 맞는 도시로 일부 네티즌이 5·18 민주화운동 등 광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접목시켜 '라쿤 광주'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또 각종 선거에서 오랜 기간 민주당에 표가 몰렸던 전력 때문에 의식이 없는 좀비로 광주시민을 매도하고자 라쿤 광주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라쿤이라는 별명은 광주와 광주시민을 모두 비난하는 별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을 비하하는 별명 그 자체를 비웃듯 지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광주에서 참패했다.

광주의 8개 선거구를 모두 차지한 것은 국민의당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단 한석도 얻지 못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가상의 게임과 맞춰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논할 것도 없이 더는 광주를 라쿤으로 칭할 이유는 없지만 여전히 인터넷상에서는 대구 고담과 함께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별명으로 계속 쓰이고 있다.

이밖에 '심시티 서울', '갱스 오브 부산', '뉴올리언스 수원', '안산안드레아스', '소돔 강릉', '잭팟아리랑 정선' 등 지역색과 일부 사건을 통해 특정 지역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별명은 이미 전국 곳곳에 꼬리표처럼 달려 있다.

이들 별명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크고 작은 키보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이미 다반사다.

8만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한 커뮤니티 관리자는 "상당수 커뮤니티에서 근거 없는 갈등을 부추기는 글과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며 "지역적 갈등을 조장하는 도시별 별명도 도가 지나칠 경우 제재를 가해 커뮤니티 내에서 회원들이 싸우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고 말했다.

◆ 충격적인 사건으로 낙인이 된 별명 '나락 신안'

지난달 22일 전남 신안군에서 발생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두고 쏟아지기 시작한 인터넷상 지역비하 발언은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신안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지역감정분쟁 안좋아합니다만'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에는 "이 정도면 종족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신안 주민 전체를 비하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신안을 넘어 전라도 전체를 비난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들'의 전라도 방언인 '우덜'을 사용한 '우덜란드 공화국 이민정책 궁금합니다'라는 게시물은 "여교사를 학부모들이 술먹이고 성폭행 한 것이 대대적으로 홍보되던데", "그런 미풍양속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등 전라도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각종 커뮤니티에서 신안군 성폭행 사건을 두고 지역 주민을 맹목적으로 조롱하거나 지역 전체를 비하하는 글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 등을 통해 "인천은 마계니까 신안은 헬조선의 나락(으로) 하자" 등 기존에 지역혐오를 부추기던 신조어와 함께 신안을 지옥에 빗대어 비하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 과거 신안에서 발생한 염전노예사건 등도 이번 여교사 성폭행 사건에 따른 지역혐오를 부각시키는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상 지역혐오의 중심에 선 신안은 오히려 국민안전처 '2015년 지역안전등급'에서 범죄 분야 안전등급 1등급을 받은 곳이다.

이는 신안의 강력범죄 발생률이 타지역과 비교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사건이 크게 부각되면서 신안에 대한 인터넷상 지역혐오 현상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각종 대중매체의 중심지인 수도권과 떨어진 거리에서 오는 사실 왜곡이 맹목적인 지역혐오를 낳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석년 광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에서는 지역과 관련된 여러 편견들이 존재하고 사실관계가 부풀려 지거나 왜곡되는 사례가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잔혹한 사건은 특정 지역에 집중돼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언론과 대중은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지난달 22일 전남 신안군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와 이웃들이 20대 여교사를 성폭행한 사건의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일부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의 지역비하가 도를 넘고 있다. 김대석 기자 김일환 기자 지난해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2015년 지역안전등급'. <자료제공=국민안전처>인천대교. <사진출처=픽사베이>20대 국회의원선거 개표결과 광주에서 국민의당이 8개 의석을 차지했다. 2016.04.14 이희정 기자 지난해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2015년 지역안전등급' 중 시·군·구별 범죄 분야 안전등급. <자료제공=국민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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