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를 치유의 섬으로 만든 '명예국민 수녀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6-08 16: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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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아픔과 함께 잊혀졌던 섬 '소록도'

명예국민증이 보여주는 두 수녀의 헌신 통해 치유의 섬으로

(서울=포커스뉴스) 2002 월드컵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이어 제2호 명예국민이 탄생했다.

그 주인공들인 스퇴거 마리안느(82)와 피사렛 마가렛(81) 수녀는 한센인들이 모여사는 소록도 주민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로 기억되고 있다.

작은 손가방 하나만을 들고 처음 전남 고흥군의 소록도를 찾아왔던 두 수녀는 40여년의 시간을 뒤로한 채 노쇠한 몸을 이끌고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지만 100년의 아픔을 가진 섬을 치유의 섬으로 바꿀만큼 많은 사랑을 남겼다.

한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오랜시간 잊혀졌던 소록도에 매년 수천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드는 이유도 이들이 베푼 사랑 덕택이다.

◆ 100년의 아픔과 함께 잊혀졌던 섬 '소록도'

섬의 모습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소록도(小鹿島).

면적 3.8㎢, 해안선길이 12㎞의 평범한 이 섬에 아픔이 깃들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16년 2월부터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한센인 격리 정책으로 소록도에 자혜의원 설립을 공포했고 한센인들을 강제로 모아 보내기 시작했다.

또 병원 등을 짓거나 전시물품을 생산하는 데도 섬으로 모은 한센인을 동원했고 자연스럽게 소록도는 한센인 정착촌이 됐다.


한센인은 나균이 피부, 말초신경계, 상기도의 점막을 침범하여 조직을 변형시키는 한센병에 걸린 환자이다.

한센병은 과거 문둥병, 학술적으로 나병이라고도 불리웠으나 이들 용어는 편견과 차별적인 의미가 내포됐기 때문에 지금은 금기시되는 단어다.

1950년대 후반에는 6000명에 육박했던 소록도 내 한센인은 현재 500여명에 불과하다.

한센병은 한때 유전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됐던 적도 있다. 소록도에서 1930년대 중반부터 단종(정관수술)을 조건으로 남녀 동거가 허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일제의 단종 및 낙태 수술 강요 등 인권 유린은 해방 후 1980년대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 2007년 제정된 '한센인 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치된 진상규명위는 한센인들의 피해 사실을 인정했고 이를 토대로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지난해 7월 강제 낙태수술 피해자에 4000만원, 정관수술 피해자에 3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앞서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달 12일 한국 한센인 9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대 일본 한센 보상 청구 소송'에서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면서 2003년 첫 보상청구서를 접수한 이래 청구인 590명 모두 피해자로 인정됐다.

한센인권변호단은 "대 일본 소록도 소송을 통해 절망과 고통의 어두운 음지에 있던 한센인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며 "단종‧낙태 등 사회적 차별의 실상이 공개되는 계기가 됐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 두 명의 천사 수녀가 찾아온 소록도

한센인의 한(恨)이 서린 소록도에 젊음을 바친 두 명의 수녀가 찾아왔다. 이들은 바로 스퇴거 마리안느와 피사렛 마가렛 수녀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각각 1962년, 1966년에 소록도로 왔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간호학교의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며 공부한 두 수녀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요청을 받은 인스브루크 주교로부터 소록도에 한센인을 돌봐줄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건네 듣고 소록도에 오게 됐다.

이들은 감염에 대한 우려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소록도 영아원 아이들의 보모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맨손으로 한센병 환자의 피고름을 짜기도 해야 했다.


그러나 두 수녀는 40여년동안을 보수도 받지 않은 채 봉사 정신 하나로 헌신했고 '할매 수녀' 등으로 불리우며 소록도 한센인들과 친구가 됐다. 또 한센인 구호단체인 벨기에 다미안 재단은 이들을 통해 5년간 90만 달러를 들여 환자의 수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후 두 수녀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소록도에 불편을 주기 싫어 떠난다'라는 내용의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지난 2005년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젊음을 모두 소록도에 바친 이들 수녀는 떠나는 그날까지도 소록도를 아끼고 한센인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떠난 소록도는 이들의 사랑을 이어받은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1990년대부터 자원봉사자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장기간 소록도에 머무르는 자원봉사자를 위한 '자원봉사자의 집도' 지난 1995년에 지어졌다.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록도를 찾은 자원봉사자는 무려 5000여명에 이른다.

또 자혜의원을 전신으로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국립소록도병원은 전남 고흥군과 업무협약을 맺고 '소록도 자원봉사 학교'를 운영해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2000명의 자원봉사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 명예국민증이 보여주는 두 수녀의 헌신

법무부는 8일 소록도 한센인을 위해 헌신한 스퇴거 마리안느와 피사렛 마가렛 수녀에게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을 수여했다.

명예국민증 수여는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돌풍을 일으킨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이어 두 번째이다.


14년만에 이뤄진 두 번째 명예국민증 수여가 증명하듯 이에 대한 가치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법무부 예규인 국적업무처리지침에 따라 명예국민증은 '국가 유공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포장 또는 표창을 받은 사실이 있는 사람'이거나 '국가 안보·사회·경제·문화 등의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사람' 중 국위 선양 또는 국인 증진에 현저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만 수여할 수 있다.

또 명예국민증을 받은 명예 국민은 대한민국에 입국 또는 체류하거나 출국하는 경우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 같은 규정을 토대로 법무부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에게 입·출국 시 전용심사대 이용 및 향후 장기 체류를 희망할 경우에 즉시 영주 자격을 부여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40여년간 한센인들의 손과 발이 돼 사랑과 봉사활동을 펼친 두 분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모든 국민이 두 분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랑과 봉사의 마음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진행된 명예국민증 수여식에서 마가렛 수녀는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해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가 대리 전수했다.8일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특별공로자 명예국민증 수여식에서 마리안느 수녀(좌)와 마가렛 수녀를 대신한 김연준 신부(우)가 명예국민증을 수여받고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부>소록도에 세워진 구라탑(救癩塔). <사진출처=고흥군 홈페이지 갈무리>1960년대 소록도를 방문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부>8일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특별공로자 명예국민증 수여식에서 마리안느 수녀가 김현웅 장관으로부터 명예국민 메달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부>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가 소록도에서 펼친 봉사의 참뜻을 기리며 지어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현판. <사진출처=고흥군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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