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링 밖의' 삶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6-05 16: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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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선수 외 '인권 활동가' 면모 보였던 알리

베트남 전 거부로 챔피언 벨트 박탈 당하는 수모도

인권 활동 공로 인정받아 '자유의 메달' 등 수상
△ 무하마드 알리와 두 딸

(서울=포커스뉴스) 미국의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알리는 사망 전 날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 입원했으며 생명보조 장치에 의존해 호흡기 치료를 받던 중 가족들의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알리는 12세때 복싱을 시작해 18세의 나이로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같은 해 10월, 프로로 전향한 알리는 3차례에 걸쳐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알리가 프로 복서로 활동한 20년 동안 통산 전적은 61전 56승(37KO) 5패다.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했다.

다만 알리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비단 전설적인 복서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알리는 링 밖에서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 베트남전 참전 거부한 알리

알리는 복싱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이던 1967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챔피언 벨트를 박탈 당하는 일에 휘말린다.

1967년 베트남전에 참전하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당시 알리는 베트남 전쟁 징집에 대해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어떤 베트콩도 나를 깜둥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며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리는 베트남전에 참전하라는 징집 영장을 거부한 사건으로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 당하고 프로 복서로써의 자격도 정지당했다.

또 당시 법원으로부터 5년의 실형을 받기도 했다. 한창 복싱 선수로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알리는 끝까지 법적 투쟁을 벌였다.

이후 알리의 병역 거부는 당시 미국 사회에 반전 운동의 불씨가 됐다고 평가 받는다.

이후 미국 대법원은 1970년 알리의 손을 들어줬고, 알리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30년 넘게 앓았던 파킨슨병과 성화 봉송

알리는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32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았다.

알리는 투병 중,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개막식에 성화 최종 점화자로 등장했다.

당시 역경에 굴하지 않는 알리의 꿋꿋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던 알리는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올림픽 개막식의 최종 점화자로 등장해 세계인들에게 '도전정신'을 보여줬다.

이 밖에 알리에게 애틀란타 올림픽은 뜻 깊다. 알리가 1960년 오하이오강에 버렸던 올림픽 금메달을 다시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알리의 인권 활동가 면모를 잘 드러내는 사연이기도 하다. 알리는 1960년 당시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후 고향으로 돌아가 동네 식당을 찾았는데, 흑인이라는 이후로 식사 제공을 거절 당하는 일을 겪는다.

이후 금메달을 강에 던져 버리고 백인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 당시 버렸던 금메달을 다시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받게 된 것이다.


◆인권 활동가로 인정 받은 알리

알리는 지난해 4월9일 피닉스에서 열린 파킨슨병 치료기금 모금 행사를 끝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알리는 은퇴 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개발도상국에 식량과 의료 지원을 하는 유엔 외교대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알리는 2012년 인권 신장에 공허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을 받는다. 당시 알리의 딸 라일라 알리가 직접 아버지에게 메달을 걸어줬다.

1989년 제정된 자유의 메달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수상한 상이다.

이 밖에 알리는 2005년 인권 증진 노력과 유엔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독일의 오토한(Otto Hahn) 평화상을 받는다.

독일의 권위있는 이 상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나치 범죄 고발자인 시몬 비젠탈 등이 수상했다.

당시 주최 측은 "유엔 친선대사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미국의 인권운동과 세계 흑인문화 해방에 평생을 바쳐 온 점이 알리의 수상 배경"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는 1998년 유엔개발계획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만인에게 뛰어난 복서로서 이 같은 명언을 남긴 알리는 스포츠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거침없이 자신의 신념을 보이며 생을 마감,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았다.<라스베가스/미국=게티/포커스뉴스> 무하마드 알리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가스 시저스 팰리스에는 그의 사망을 애도하는 대형 걸개가 걸렸다. ⓒ게티이미지/이매진스2016.06.05 ⓒ게티이미지/이매진스 무하마드 알리와 두 딸. 2016.06.04 ⓒ게티이미지/이매진스 2016.06.04 ⓒ게티이미지/이매진스 2016.06.05 ⓒ게티이미지/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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