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김태리·하정우·조진웅 열연
(서울=포커스뉴스) 아름답다. '아가씨'를 보고 있는 144분 동안 이어질 생각이다. 박찬욱 감독은 마치 스크린에 그림을 그리듯 색, 빛, 인물, 그리고 움직임을 담아냈다. 마치 아름답지 않은 것은 내 작품에 들어올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아가씨'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예정인 일본인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를 둘러싼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은 소매치기 숙희(김태리 분)를 하녀로 위장해 히데코에게 접근한다. 히데코는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보호 하에 있다. 그는 일본에 공을 세운 조선인으로 히데코의 이모이자 몰락한 일본 귀족(문소리 분)과의 결혼을 통해 코우즈키라는 성을 얻었다.
이상은 '아가씨'의 표면적인 줄거리다. 속임수, 배반, 위험한 사랑 등 익숙한 소재의 영화다. 하지만 극의 전개는 익숙하지 않다. 박찬욱 감독은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시선을 나란히 배치한다. 처음에는 숙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바통을 히데코가 이어받는다.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본다. 영화가 인물의 관계성을 극대화 시키는 이유다.
같은 사건을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은 달라진다. 마치 한 그림 속에 마녀도 아가씨도 공존하는 착시 이미지 같다. 이처럼 '아가씨'에서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한다. 네 명의 인물 모두 거짓을 품고 서로에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시선을 달리해서 바라보는 것은 사라 워터스의 원작소설 '핑거 스미스'와 같다. 하지만 '아가씨'는 큰 틀 외에는 원작소설과 다른 흐름을 갖는다. 소설 속에서 두 가지 시선은 사건을 전개하는 중요한 힘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는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를 향해 쌓아가는 감정을 고백하듯이 사용된다.
위장한 하녀 숙희는 아가씨를 "제 아기씨"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옷을 입고 벗기고, 목욕을 시켜주고, 뾰족한 이를 갈아주며,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게 잘못인 아이는 없어요"라고 위로한다. 속이기 위한 접근은 어느새 진심이 된다. 히데코는 그런 숙희를 바라본다. 백작과 만나는 자신을 보며 왜 '당신 싫어요'라는 눈빛을 보내는지, 숙희의 발걸음이 쿵쿵거리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지는지를 생각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궁금증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인 교감을 통해 확실해진다. 관객들이 '아가씨'에 대해 궁금한 것 중 하나일 거다. 숙희 역의 오디션 당시 붙었던 '노출수위 협의 불가'라는 조건은 그 궁금증을 부풀렸다. 실제로 김민희와 김태리의 정사 장면 촬영 당시, 천막 속에 카메라만 들어와 원격 조정으로 촬영이 이루어졌다. 한 공간에서 오로지 두 여자만이 있는 정사 장면이 완성됐다. 이런 익숙하지 않은 경험은 아마도 관객에게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아가씨'에 등장하는 두 명의 남자 캐릭터도 흥미롭다. 코우즈키는 유럽식, 일본식, 그리고 조선식 건물이 이어진 거대한 저택의 주인이다. '아가씨'의 배경이 된 1930년대에서 그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 야망은 몰락한 일본인 귀족과 결혼하면서 이뤘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서책을 누구보다 아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의 머릿속이 얼마나 헛된 것으로 가득한지, 그 비틀어진 이면은 저택, 서재, 그리고 지하실 등에 녹아있다.
사기꾼 백작은 돈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의 겉모습은 배려, 매너, 여유, 웃음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와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그에게 마음을 내준다. 히데코와 숙희는 백작의 내면을 보는 유일한 여성 캐릭터다. 그들의 시선에서 보는 백작은 조금 다른 인물이 된다. 하정우는 그런 백작 역을 맡아 '암살'(2015년)에 이어 가장 매력적인 남자가 됐다.
앞서 말했지만 '아가씨'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저택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영화의 약 70%의 공간은 저택에서 촬영됐다. 심지어 히데코와 숙희의 시점으로 영화 속에서 두 번 등장한다. 그런 저택은 디테일로 가득 차 있어서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빛을 받지 못해 해골처럼 보이던 히데코의 초상화가 저택에 처음 발을 들인 숙희가 지나가며 빛을 받아 아가씨의 모습으로 바뀌는 장면은 다섯 번째 주인공이 주는 참, 아름다운 복선이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에 대해 "제가 만든 작품 중 가장 대사가 많다. 주인공이 네 명이니만큼 상영시간도 긴 편이다. 굉장히 아기자기한 영화다. 깨알 같은 잔재미가 가득해, 제 영화 중 가장 이채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아가씨'는 굉장히 명쾌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거지'라는 고민은 접어둘 수 있다. 그런 면이 박찬욱 감독의 전작과 다르기도 하고, 관객의 다른 평을 유발할 수 있다.
참, 아름다운 '아가씨'다. 박찬욱 감독의 첫 시대물은 모든 장면에서 그와 오래된 스태프들의 손때를 느낄 수 있다. 거기에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의 숨소리와 시선이 덧입혀졌다. 이는 오는 6월 1일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 청소년 관람불가. 상영시간 144분.김태리,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이 열연한 '아가씨'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의 발을 손질하는 하녀 숙희(김태리 분)의 모습. 사진은 '아가씨'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백작(하정우 분, 왼쪽)과 코우즈키가 낭독회에 임하고 있다. 사진은 '아가씨'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아가씨'의 주요인물인 백작(하정우 분), 숙희(김태리 분), 히데코(김민희 분),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모습(왼쪽부터). 사진은 '아가씨'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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