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여성 살해 사건' 집담회… "여성혐오, 사회적 연대로 대안 찾아야"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5-26 22: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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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300여명 참석, 학자·언론인·시민단체 대표 등 발언 이어져

"혐오범죄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인식에 있어"
△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서울=포커스뉴스) '강남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단체가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 혐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 등 단체는 공동으로 26일 오후 서울 중구 시민청 지하1층 활짝라운지에서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집담회(集談會)를 주최했다.

이날 집담회는 시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자·언론인·여성단체 대표자 등의 열띤 발언이 2시간 넘게 이어 졌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한국사회의 여성혐오는 여성의 시민성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와 언론 등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남성들이 여성의 시민성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여성이 (군대 등의)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려고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이런 논리에 의해 여성의 권리 보장 요구는 '떼를 쓰는 것'으로 비하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같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수단 혹은 성적인 대상으로 격하되기 쉽다. 구조적인 차별과 성에 기초한 폭력이 만연해 있는 데다, 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하는 정서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터넷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 여성혐오는 마치 놀이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이같은 혐오의 정서가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이는 언론이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기위해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기반을 둔 주장과 의견들을 보도함으로써 부풀려지곤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교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가 일간베스트(일베)와 같은 여성혐오 커뮤니티보다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일베의 경우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야만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인적망을 통해 정보를 유통하는 SNS의 경우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혐오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오랜 시간 겪어온 성차별에 대한 부당함을 깨닫고 변화를 갈망하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 여성 살인 사건 이후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오랜 여성운동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의 역할이 특히 컸다"며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 여성들은 여성운동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으며 또한 서로 지지와 연대를 통해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남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시민들이 이를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이라고 정의하기 시작한 것은 남성에 대한 공격과 혐오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붕괴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잔여물들을 떨쳐내려는 투쟁에 동참해달라는 권유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이번 사건을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라고 발표한 경찰의 결정이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어떤 사건을 혐오범죄라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범행의 주된 동기가 혐오라는 것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강남 여성 살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면서도 "범죄자에 대한 정신감정 등 충분한 수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묻지마 사건으로 발표한 것에는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여성운동에 힘을 싣는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차별금지법이나 혐오표현금지법 등의 법을 제정함으로써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범죄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단체 대표자들도 발언자로 나서 여성에 대한 혐오·폭력·차별 등에 대해 발언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전국에 있는 150여개의 성폭력상담소에 연간 9만건 이상의 폭력, 혐오, 차별과 관련된 피해사례가 접수되고 있다"며 "강남 여성 살해 사건으로 여성혐오범죄에 대한 공론의 장이 마련됐을 뿐 이같은 여성혐오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범죄대응 특별 치안활동'이나 '공중화장실법 개정' 등은 혐오범죄를 막는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넘기 위해서는 논쟁과 추모를 넘어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담회를 주최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김금옥 상임대표는 "강남 여성 살해 사건 이후 곳곳에서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의 응답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행동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가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인식을 타파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 등 단체는 공동으로 26일 오후 서울 중구 시민청 지하1층 활짝라운지에서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집담회(集談會)를 주최했다.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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