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뒤 여소야대…與野 입장도 바뀌었을까
다수결 원칙 위배 vs 입법절차 침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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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의장 교육 듣는 20대 국회 초선 당선인들 |
(서울=포커스뉴스) 국회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이나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6일 오후 2시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등 간의 권한쟁의심판' 사건을 선고한다.
이번 사건은 새누리당이 지난 2014년 12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외교통일위원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 등의 심사기일 지정(직권상정)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정 의장은 국회법상 직권상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새누리당의 요청을 거부했다.
아울러 새누리당이 정희수 기획재정위원장에게 요구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신속처리대상 안건 지정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주호영 의원 등 당시 새누리당 의원 19명은 지난해 1월30일 해당 조항 등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 등으로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국회선진화법'이란 무엇인가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제정된 국회법 개정안, 일명 '국회선진화법'은 지난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가 법안 처리를 두고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행태를 추방하자는 취지가 담겨 '몸싸움 방지법'이라고도 불린다.
이같은 국회선진화법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황우여‧황영철‧구상찬‧김세연 의원과 민주당의 박상천‧원혜영‧김성곤‧김춘진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의 주도로 발의됐으며, 임기 마지막 날인 2012년 5월2일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19대 국회 임기 개시일에 맞춰 시행된 국회선진화법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의 경우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토록 했다.
아울러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 △안건조정제 △안건신속처리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도 주요 골자로 한다.
우선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로 제한, 국회의장이 쟁점법안을 일방적으로 직권상정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또 쟁점 법안에 대해 소관 상임위원회의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면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에 대한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하다.
아울러 국회선진화법에는 신속처리가 필요한 안건을 지정하는 '안건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도 포함됐다. 재적의원 과반의 요구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시 국회의장은 해당 안건을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하게 된다.
다만 안건으로 지정된다 해도 각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기일을 채우기 위해 최장 270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조건도 포함돼, 사실상 실행이 어렵다.
마지막으로 국회선진화법은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경우, 본회의 심의 안건에 대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벌일 수 있는 필리버스터 제도도 보장한다. '합법적 의사일정 방해'로 볼 수 있는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만 종료된다.
◆총선 뒤 변화한 정치 지형…與野 선진화법 입장도?
총선 전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한 국회선진화법이 19대 국회를 최악의 '식물국회'로 만들었다며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이 같은 개정 움직임은 의회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총선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예상 외로 선전하자 정치권의 국회선진화법 입장 변화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제1·2당의 지위가 뒤바뀐 만큼 의석수에 따른 유불리 때문에 국회선진화법 개정 강행과 개정 반대 입장이 뒤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따라 법을 손질할 때 '의석수에 따라 법을 바꾼다'는 비난이 부담스러운 듯 여야는 모두 뚜렷한 입장 변화는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 전·현 원내대표들은 모두 "처지가 달라졌다고 원칙과 입장이 바뀔 순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지난 1일 "180석 의결이라는 지금 시스템은 사실 다수결 원리와는 배치된다"며 "의석수가 바뀌었다고 해서 원칙이 바뀔 순 없다"고 주장했다.
원유철 전 원내대표 또한 지난 22일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에 출연해 "기본적으로 국회 선진화법(개정)을 주장했던 그대로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며 "처지가 달라졌다고 (입장이) 바뀔 순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19대 국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25일 <포커스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부 몇 가지 보완할 문제들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으로선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기 원내대변인은 다만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내부 질서에 관한 사안이어서 법률적으로 일도양단으로 재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재판소의 도마 위에 오른 상황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은 '국회선진화법은 양당구조에서 탄생한 법이기 때문에 다당제가 되면 선진화법도 개정돼야 한다'는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포커스뉴스>와의 통화에서 "선진화법은 다수결의 원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여야 3당 체제의 발전만큼 합의가 된다면 선진화법도 손질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그러면서 "양당구조에서 3당구조로 바뀌었으니 선진화법이 필요가 없을 만큼 20대 국회에선 대화와 타협의 정치, 생산적 국회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반다수결 원칙에 위배 vs 입법절차 침해로 보기 어려워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공개변론을 열고 새누리당과 정 의장 측의 의견을 들었다.
청구인 측 대표로 참가한 주호영 의원과 권성동 의원은 국회법 85조 1항, 85조의2 1항 등에 대한 위헌성을 주장했다.
국회법 85조 1항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에만 국회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85조의2 1항에는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할 경우에만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청구인을 대리한 법무법인 위너스의 손교명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가 30일 이상 (법안 처리를) 지연하면 바로 본회의에 넘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일본 헌법도 긴급안건이 위원회에 계류돼 있어도 심사기간을 지정하거나 본회의에서 지정하도록 해 입법권의 본질을 보장한다"며 "그러나 국회법 85조 1항은 천재지변과 교섭단체 합의 등이 아니면 다른 긴급안건에 대해 국회의원이 심의·표결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법 85조의2에 대해서는 "안건의 신속처리대상 지정에 재적의원 과반수 서명과 재적 5분의3 이상의 찬성 의결로 무조건적인 합의를 강요하며 가중다수결을 요구하고 있다"며 "헌법에서 규정한 일반다수결의 원칙에 반하는만큼 이를 위헌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같은 가중다수결은 오히려 소수 세력의 의사로 다수 의사를 강요하는 자가당착이 될 수 있다"며 "개정 당시에도 재적의원의 과반수도 되지 않는 127명의 찬성으로 가결된 만큼 이를 무효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회의장을 대리해 참석한 법무법인 율촌의 김근재 변호사는 "국회의장이 국회법에서 정한 요건에 부합하는 적법한 처분이라는 것에는 다툼이 없다"며 "다만 국회의장은 입법부의 수장으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조참가인을 대리해 참석한 법무법인 정율 조상미 변호사는 "해당 조항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는 것은 맞지만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권을 제한한다고는 볼 수 없다"며 "또한 국회는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얼마든지 법을 제정할 수 있으므로 이 조항이 국회 입법절차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번 권한쟁의심판은 청구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입법부가 논의해야 할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판단을 헌재에게 돌려 위헌심사의 도구로 삼겠다는 의도가 내재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만약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에 대한 국회의장의 권한침해를 인정하더라도 선진화법 조항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정 의장의 행위에 대한 처분 취소나 무효 등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날 헌재의 결정과 별개로 국회에서 또다시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국회에서 판단해야 할 일을 사법부로 미뤘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국회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방문한 20대 국회 초선 당선인들이 전자투표 시연 등 교육을 듣고 있다. 2016.05.11 박동욱 기자 2016.05.25 조숙빈 기자 한글을 우리 고유문자로 규정한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국어기본법 제3조' 등에 대한 공개변론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이날 변론에 참석한 헌법재판관들이 취재진의 퇴장을 기다리고 있다. 2016.05.12 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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