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활동가·예술가 등 모여
"옥바라지 골목은 저항 역사의 상징, 철거하면 역사적 진실 잃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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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 반대 '골목 음악회' |
(서울=포커스뉴스)"오늘 이 자리에는 강제철거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난 17일 우리는 이 땅의 야만을 목격했습니다. 역사와 삶이 살아 숨 쉬던 이곳은 이제 폐허로 변했습니다. 제 노래로 조금이나마 아픔이 치유되길 바랍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앞에 설치된 작은 천막 아래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조용한 기타의 선율이 하늘에 울려 퍼지자 모인 이들은 금세 저마다의 아쉬움과 분노, 억울함 같은 감정들을 토해내듯 쏟아냈다.
강제철거라는 폭풍이 지나간 지 닷새가 흘렀지만 이들의 가슴 속에 패인 깊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듯했다.
이날 이곳에서는 '골목 음악회'라는 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17일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 여관 일대에서 강제철거가 집행된 이후로 이에 반발한 주민들과 활동가, 예술가 등이 모여 기획해 이번으로 4회째를 맞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양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꼭 같았다. 그것은 옥바라지 골목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주택에서 38년째 살고 있다는 거주민 최은아(49·여)씨는 "강제집행되는 그 날 처참한 마음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며 "수십 년을 산 터전을 어떻게 떠날 수 있겠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최씨는 "지난해 4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해 달라고 애원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안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6월 말에 관리처분인가가 나와 배신감이 컸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전 옥바라지 골목의 강제 철거과정에서 주민들과 용역업체 간 무력충돌이 발생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곳을 직접 찾아 "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는 없다.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공사를 중단시킬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애초 박 시장은 이날 오후 5시20분 옥바라지 골목 보존 대책위원회와 면담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를 놓고 긴급회의를 열게 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씨는 "시청 측 직원과 만나 5월 넷째 주 안으로 박 시장과 면담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확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면담은 성사될 것"이라고 밝혔다.
옥바라지 골목 강제철거 논란이 금전적인 보상을 둘러싼 주민과 조합 간 알력 싸움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니냐는 일부의 의혹에 반발하는 주민도 있었다.
옥바라지 골목에서 유일하게 남은 숙박업소 구본장 여관의 업주 이길자(63·여)씨는 "돈을 바랐다면 진작에 서명하고 나갔을 것"이라며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17일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끌려 나와 길바닥에 내팽개쳐지면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며 "시장이 약속했으니 이제는 믿을 뿐이다. 여생을 이곳에서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난 3월부터 옥바라지 골목 보존 대책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후지이 다케시(44)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옥바라지 골목이 갖는 역사적 상징성을 설명하며 강제철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지이씨는 "서대문형무소가 탄압의 상징이라면 옥바라지 골목은 저항의 상징"이라며 "서대문 형무소가 가치 있는 것은 뒤에서 묵묵히 옥바라지한 민초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을 증명할 자료가 없으므로 재개발을 추진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종로구청 측의 주장에 대해 "가사노동의 기록이 역사에 남지 않듯, 옥바라지와 같은 개인들의 역사는 문헌에 기록되기가 쉽지 않다"며 "구전된 내용만으로도 이미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은 충분히 검증됐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어 "무엇보다 옥바라지라는 엄연히 존재한 역사를 기억할 근거를 남겨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본의 논리로 옥바라지 골목을 철거한다면 한국의 후세들은 중요한 역사적 진실 하나를 잃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이곳에 모인 20여명의 사람들은 조용히 얼굴을 마주한 채 서로의상처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왜 부끄러움은 늘 보는 이의 몫인가?'
이름없는 한 시민이 강제철거가 집행되던 17일 남긴 글이다.
옥바라지 골목 강제철거 현장 주변을 둘러싼 길고 높은 벽에는 이 같이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한편 무악 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완료되면 옥바라지 골목이 있던 이 자리에는 지상 16층, 195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다.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앞에서 옥바라지 골목 강제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활동가·예술가 등이 '골목 음악회'를 개최했다.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무악 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옥바라지 골목 주변 철거 현장의 모습.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무악동 '무악 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공사 현장을 둘러싼 벽면에 17일 강제 철거 당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황혜준(23·여)씨의 모습.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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