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국가책임'?…석면 파우더 사례로 본 재판 전망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5-22 22: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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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손해배상 소송 11건

'석면 베이비 파우더 사건' 국가책임 인정 안해 미지수

미국 법원은 유사 사건에 막대한 위자료 인정

징벌적 손해배상 미도입, 위자료 수천만원 수준 전망
△ 집단소송 소장, 접수하겠습니다

(서울=포커스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점차 활발해지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국가와 제조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도 어느덧 10건을 넘어섰다.

22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피해자 등이 국가와 제조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은 11건이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화학물질 생활용품과 관련된 판례가 전무해 피해에 따른 위자료 산정은 물론 소송의 승패 또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석면 베이비 파우더' 사건에 대한 판례를 인용해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전망해본다.

◆ "국가 책임 없다", 석면 베이비 파우더 사건

지난 2009년 시중에 유통되는 베이비 파우더 등에서 석면이 검출돼 큰 논란이 일었다.

석면은 호흡을 통해 마실 경우 폐암이나 폐증, 늑막 등에 악성종양을 유발할 수 있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됐다.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 파우더를 사용한 부모들은 "국가와 제조업체들이 안전관리대책을 게을리했다"며 국가와 제조업체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들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단 한 차례도 승소 판결을 받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베이비 파우더에 석면이 포함됐다는 것 이외에 제조업체가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고 고의 또는 과실로 불법행위를 했는지에 대해 명확한 입증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고가 주장하는 정신적 고통 등이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 지지되지 못하는 이상 국가와 제조업체에 대한 정신적 손해 배상 의무는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도 단기간 소량의 석면에 노출된 것만으로 폐암 등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고 원고가 주장하는 정신적 충격에 대해 객관적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의 판결이 정당한 것으로 보고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어느 정도의 석면이 인체에 유해한지 확정적인 자료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책을 마련하는 등 규제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두고 직무상 의무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심과 같이 국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 "공공건물이나 다중 이용시설에도 석면 함유 자재가 사용되는 등 일반인도 일상생활에서 불가피하게 석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원고들이 주장하는 정신적 고통이 법적으로 배상돼야 하는 수준으로 평가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 유사한 사건에 막대한 위자료 인정한 미국 법원

석면 베이비 파우더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인 부모들이 패소한 것과 달리 최근 미국에서는 유사한 사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묻는 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미주리주 연방법원은 지난 2일(현지시간) 존슨앤드존슨(J&J)이 난소암 발병 피해를 입은 글로리아 리스테선드(62)에게 피해배상금 50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 5000만 달러 등 5500만 달러(약 65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글로리아 리스테선드는 수십년 동안 존슨앤드존슨 파우더를 사용했다가 난소암 진단을 받았고 자궁절제술 등 관련 수술을 받았다.

앞서 지난 2월에도 미국 법원은 존슨앤드존슨 파우더와 난소암 발병의 상관성을 인정하고 관련 제품을 사용하다가 난소암 투병 중 사망한 재키 폭스의 유가족에게 7200만 달러(약 85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들 여성은 모두 탈크(활석)가 기반인 존슨앤드존슨 파우더를 애용했다.

미국 소비자단체는 20여년 전부터 탈크를 발암 가능성이 큰 물질로 지목해왔지만 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존슨앤드존슨이 30여년 동안 파우더에 사용된 탈크의 안전성을 인정한 학계의 의견과 배치되는 판결이라며 항소 의지를 밝힌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암 유발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며 형벌적 성격이 강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존슨앤드존슨에 물었다.


◆ 서울변회 "처벌 강화 입법 촉구"…20대 국회로 넘어가

유사한 사례에 대해 한국의 판례와 미국의 판례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는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관련 법안의 입법을 촉구했다.

서울변회는 성명에서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임시국회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백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은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고도 필요한 조치없이 제품을 공급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손해액의 12배까지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도 19대 국회는 지난 19일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 간 이견 속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입법을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소송들은 피해자들의 승소로 끝나더라도 많은 위자료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따른 위자료는 수천만원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앞서 벌어진 석면 베이비 파우더 사건과 같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29일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의 유가족 박모씨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를 유해물질 등으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재판부는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에 유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이 포함된 것을 알았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들이 사망원인으로 주장하는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유독물질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판단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따라 적정하게 이뤄져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재 원고 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황이지만 국가의 책임이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정부 역시 석면 베이비 파우더 사건에 대한 판례 등을 인용하고 공무원이 시중에 유통 중인 모든 제품에 포함된 물질의 위해성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치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영주 변호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관련 손해배상 소송들은 형사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그 결과를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며 "참고할만한 판례 등에 비춰봤을 때 법원이 국가에 책임을 지울지는 미지수이고 위자료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 수천만원 내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피해자 공동소송대리인단의 집단소송 소장 접수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대표들과 공동소송대리인단이 소장을 들고 있다. 2016.05.16 성동훈 기자 2016.02.26 이인규 인턴기자 (서울=포커스뉴스)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환경 및 시민단체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05.17 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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