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 이틀째 추모 발길 이어져…"미안하고 화난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5-19 13: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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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열기 계속

시민들 저마다 분노·슬픔·안타까움 등 드러내

온라인 공간에서 21일 오후 추모 집회 개최도 추진
△ 추모 물결의 흔적으로 뒤덮힌 강남역

(서울=포커스뉴스) "비슷한 또래의 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저 하늘에서…"

서울 지하철 강남역에서 만난 시민 김학규(67)씨는 한숨을 쉬며 참담한 심정을 털어놨다. 안경에 맺힌 눈물을 힘겹게 닦아낸 그는 한참이 지나도록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19일 오전 강남역 10번 출구 앞 풍경이다. 전날 오전부터 시작된 이른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기리는 추모 열기가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하나 둘 나붙기 시작한 추모글이 적힌 포스트잇 메모는 이미 역 한쪽 벽면을 완전히 덮기에 이르렀고 바닥에 놓인 하얀 국화꽃들은 역 주변에 작은 띠를 만들었다.

이날 강남역 10번 출구는 오전부터 피해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작은 종이에 자신이 느낀 슬픔과 분노를 적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시민들은 끔찍한 범죄로 희생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변유진(29·여)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표적이 됐다는 사실에 안타깝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남성혐오'로 서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고인이 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이동현(29)씨도 "막상 이곳에 오니 먹먹한 마음"이라며 "피해자가 여자친구와 비슷한 또래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더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와 온라인 공간에서의 다툼에 대해 분노를 보인 시민들도 있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생 김모(25)씨는 "언론은 이 사건을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이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잘못됐다. 이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라고 불러야 맞다"라며 "교묘한 수사로 사회의 모순을 가려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행한 강모(24·여)씨도 "가해자가 본인 입으로 여자가 무시해서 죽였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이게 여성혐오 범죄가 아닐 수 있냐"며 "이번에는 강남역이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여성은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불안함을 드러냈다.

숙명여대 재학생 조기남(24·여)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시작된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조씨는 "모든 남자가 잠재적 범죄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여자가 잠재적인 피해자인 것만은 사실" 이라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감정 이입해서는 사건의 본질을 살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안전이별'이라는 게 있다. 이별을 고한 여성이 남자친구로부터 보복범죄를 당하는 일이 많아 생긴 신조어"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늘고 있는 것에 슬프고 놀라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 집회 개최도 추진되고 있다.

18일 온라인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강남역 추모 집회'라는 카페가 개설돼 누리꾼들 사이에서 추모집회의 일시·장소·형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해당 카페에 올라온 공지사항에 따르면 오는 21일 오후 5~8시에 강남역 10번출구 혹은 강남구 역삼공원에서 개최되는 것이 유력해 보인다.

카페 운영자 '강남역추모집회'는 "여성 혐오 범죄에 분노한 사람들이 주말 저녁 함께 모여 촛불집회나 행진 등을 하는 형태의 집회를 열고자 한다"며 "특정 정당이나 단체의 정치성향이 개입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카페에서는 집회 참가 인원을 신청받고 있으며 구체적인 집회의 형식에 관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강남역 10번 출구의 풍경을 담은 사진전 개최 △범죄자의 얼굴 공개 촉구 캠페인 △데이트 폭력 방지를 위한 법안 발의 촉구 △선정적인 보도를 한 언론에 대한 각성 촉구 등의 의견이 나와 협의 중이다.

18일 오후 7시쯤 개설된 이 카페에는 지금까지 700여명이 가입했고 이 중 100여명이 집회 참가를 신청했다.(서울=포커스뉴스)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2016.05.19 성동훈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2016.05.19 성동훈 기자 <사진 출처=다음 카페 '강남역 추모 집회'>(서울=포커스뉴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시민들이 '묻지마 살인'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2016.05.18 허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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