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정부, 자연스럽게 제창…이명박정부가 식순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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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서울=포커스뉴스) "합창이냐 제창이냐"
민중가요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의 '소통·협치' 풍향계로 다시 급부상했다. 국가보훈처는 16일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합창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도 반발하고 나섰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알고싶은 두세가지 것들'을 40대 아빠와 중학생 딸의 가상 대화를 통해 풀었다.
딸=합창이랑 제창이랑 뭐가 다른거예요?
아빠=합창(合唱)은 합창단의 곡을 자유롭게 따라 부르는 것이지만, 제창(齊唱)은 합창단의 곡을 의무적으로 함께 부른다는 점에서 다르지. 노래가 어떤 행사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되면 제창을 해야 한단다. 노래는 정신을 담는다고 생각하니까 매우 중요한 문제인 거지. 아빠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애국 조회' 시간에 애국가를 합창한다고 안하고 제창한다고 했단다. 광복절이나 3·1절에 애국가 제창 시간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란다.
딸=근데 유독 이 노래만 합창이냐 제창이냐 다투는 이유가 있나요?
아빠=제창을 하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도 노래를 불러야 한단다. 5·18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김대중 대통령이나 그 정신을 계승한 노무현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불렀지. 하지만 그 이후로는 사회 분위기가 약간 달라졌어. 2009년 이명박 대통령 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식순에서 빠졌고 부르는 형식도 합창으로 바뀌게 됐지.
딸=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이후로 어떻게 됐어요?
아빠=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부르냐, 안부르냐 갈등을 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인 2010년 이 노래를 부르는 기념식과 안부르는 기념식, 두개로 갈라져 버렸단다. 안타깝지만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야.
딸=근데…, 5·18민주화운동이 뭔가요?
아빠=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18일부터 5월27일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전두환 군부 쿠데타 세력의 독재에 반대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운동이란다. 전두환은 총칼을 찬 공수부대를 투입했고 결국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지.
딸=5·18민주화운동은 언제부터 국가기념일이 된 거예요?
아빠=국가기념일이 된 건 17년이나 지나서였단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져 희생자에 대한 보상 및 희생자 묘역 성역화가 이뤄졌지. 1997년 '5·18민주화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 정부 주관 기념행사가 열리기 시작한 거야.
딸=임을 위한 행진곡과 5·18민주화운동은 무슨 관계예요?
아빠=1982년 2월, 추운 겨울날 옛날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몰래 열린 윤상원과 박기순(여)의 영혼 결혼식에서 처음 불려졌기 때문이란다.
윤상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에게 맞서 싸웠던 시민군의 대변인이었단다. 당시 31세였는데 5월27일 끝내 공수부대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지.
박기순은 1978년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한 뒤 공장에 취업해서 들불야학을 만들었지. 박기순은 윤상원 보다는 8살 아래였지만 은행원 생활을 청산하고 뒤늦게 공장에 들어온 윤상원을 야학으로 안내했어. 21세 꽃다운 나이의 박기순은 그해 겨울, 연탄가스에 숨지고 말았어.
딸=두 사람이 생전에 좋아했어요?
아빠=글쎄. 좋아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박기순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뒤 윤상원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고 해. "불꽃처럼 살다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았는가? 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 속에서 피어난다….
딸=썸 탄거네요. 뭔가 안타까워요.
아빠=그렇지? 그래서인지 두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된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1982년 친구인 작곡가 김종률과 함께 노래곡 '넋풀이-빛의 결혼식'을 만들어서 영혼 결혼식을 시킨 거야. 황석영은 노래극 안에 백기완 시인의 '묏비나리'에서 노랫말을 가지고 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거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 결혼식 축가로 불려진 뒤부터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지.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려지면서 민주화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게 된 거란다.
딸='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어떻게 되나요?
아빠=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의 '소통·협치' 풍향계로 다시 급부상했다. 사진은 임을 위한 행진곡 원본 악보 <사진출처=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18일부터 5월27일까지 광주를 중심으로 전두환 군부 쿠데타 세력의 독재에 반대해 민주주의를 외쳤던 운동이다. <사진출처= 5·18기념재단>박기순(왼쪽)은 1978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다. 박기순이 들풀야학으로 이끈 윤상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에게 맞서 싸우다 총탄에 사망했다.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두 사람은 영혼 결혼식을 치렀다. <사진출처=나라사랑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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