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아티스트 소개하는 '통로'에서 국내아티스트 위한 '플랫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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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중 생각에 잠긴 이승효 예술감독 |
(서울=포커스뉴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티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다름'입니다.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꺼내주기만 하면 위대한 예술이 그 안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날 것 그대로를 꺼내놓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지금 제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국제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봄'을 총괄 기획하고 있는 이승효 예술감독의 말이다. 페스티벌봄은 지난 2007년 시작해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했다. 무용·연극·미술·음악·영화·퍼포먼스 등 현대예술 주변부의 전 장르를 아우르며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예술가들을 초청한다. 2013년 이승효 예술감독이 2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페스티벌봄에 새 바람이 불었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통로'에서 이제는 국내 아티스트들이 지속가능한 창작을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많이 가져와서 보여줬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아티스트들도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지속가능하게 창작할 수 있는 풀랫폼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가 바로 EG구요."
EG는 마술사로 유명한 이은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공연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는 지난 3월 열린 페스티벌봄에서 개막작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를 예술로 인지한 최초의 영화제작자 조르주 멜리우스가 원래 마술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EG의 행보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흑백영화에서 처음으로 CG(Computer Graphics)를 한 사람입니다. 필름을 잘라 붙여서 특수효과를 선보였습니다. EG의 '멜리에스 일루션-에피소드'는 세계 최초의 특수효과 영화를 만든 사람이 원래 마술사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EG의 작품은 장르가 없다. 말 그대로 '경계 없는 예술'이다. 이 감독은 이처럼 어느 한 분야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페스티벌봄'이라고 말한다.
"페스티벌봄의 정체성은 다원예술이었습니다. 예술은 미술 연극 무용 문학 전통예술 음악 등 6개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것들을 하는 게 저희 축제입니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특이한 연극이나 무용만 가져와도 한국에 없던 거라서 경계 밖에 있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그 다음의 '새로운 것'을 계속 찾는 중입니다."
이승효 감독은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예술대 예술환경창조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9세에 페스티벌봄의 2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공학도 출신 젊은 예술감독의 등장은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에 부응하듯 이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저는 연간 프로그램 같은 것을 기획하는 사람이고 그것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게 축제입니다. 올해에는 압축했던 걸 다시 펼쳐놓았습니다. 지난해까지는 한 달 동안 집중해서 축제를 했다면 올해는 일 년 동안 상시적으로 축제를 열 계획입니다."
이 감독이 축제를 펼치게 된 이유는 독자 생존의 길을 찾기 위해서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는 축제에서 벗어나 메인스폰서 없이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도 중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에서부터 유통하는 시스템까지 그의 머릿속은 빈틈없이 꽉 차있다.
"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작품을 유통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입니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예술가나 기획자가 거기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심사에 통과해야하니까요. 종속이 안 되려면 지원금을 안 받아야 합니다. 지원금 없이 돌아가려면 누군가가 소비를 해줘야 하고요."
돈 안 되는 예술을 어떻게 돈이 되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 감독의 고민인다. 콘텐츠를 유지하면서 유통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실험을 진행 중이다.
"대중적으로 가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대중적으로 가지 않고도 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 그 방법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기호는 바뀌기 때문에 대중적인 코드에 맞춰서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는 유행을 쫓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유행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유행이 되면 그게 대중적으로 되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아티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냥 너무 다른 사람들이 아티스트였다고 말한다. 너무 달라서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아티스트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반 고흐가 이상하고 싶어서 이상한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냥 자기 꺼를 한건데 사람들이 못받아들인거죠. 저는 예술이라는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계속 바뀌니까 계속 다른 새로운 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이상하겠죠.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냥 이상한 걸 만드는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이 감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아티스트들이 갖고 있는 '다름'이다.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한국의 아티스트인 백남준을 꼽았다. 그리고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꺼내주기만 하면 위대한 예술이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거지만 일단 꺼내놓고 봐야 그 중에 한 명 백남준 같은 사람이 나와서 시대를 바꾸는 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하고 싶은 걸 못하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하다보니까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저는 예술은 충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충격을 주지 못하는 게 어떤 예술로서의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충격을 주려면 날것 그대로가 나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의 '날 것' 그대로를 꺼내놓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고 유통 시스템과 새로운 제작 방식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무겁지만 힘찬 첫 발을 내딛는 중이다.
"예술이라고 특별한 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고 창작하고 대중들과 만나는 방법이나 펀딩에 대해 고민하는거죠. 차이가 있다면 예술계에는 기존에 있었던 모델 자체가 없다보니 아예 새로 만들어야한다는 것이 어려운거죠."(서울=포커스뉴스) 예술감독 이승효가 서울 서초구 포커스뉴스에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영걸 기자 EG의 '멜리에스일루션_프롤로그' 공연 모습.<사진출처=페스티벌봄>페스티벌 봄(Festival Bo:m) 2016 S1의 'Fe;Bom 실험실'.<사진출처=페스티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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