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그리고 소파 방정환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5-05 11: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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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 지배하던 시기, 처음으로 '어린이' 단어 사용

세상 떠나는 그날까지 "어린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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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있는 수운회관 건물 앞에는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라고 적힌 기념비가 있다.

1923년 5월 1일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이 국제연맹의 '아동권리선언'보다 1년 먼저 '어린이날'을 제정, 선포한 곳이라는 사실을 기념하는 비(碑)다.


◆ '어린이'의 아버지 방정환

소파 방정환은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효'와 '장유유서' 사상이 지배적이던 시기였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천도교 교리를 바탕으로 아동에게까지 '어린이'라는 존칭을 쓴 것은 결코 작은 물결(小波)이 아니었다.

천도교 기관지 '개벽'에서 아동문학을 연재했던 방정환은 최초의 순수아동잡지 월간 '어린이'를 창간했고 이후 도쿄에서 어린이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해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당초 어린이날은 5월 5일이 아닌 5월 1일이었다.

천도교 행사가 그날 열리기도 했고, 노동절에 맞춰 어린이날을 지정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날은 얼마 못가 일제의 핍박을 받게 된다. 어린이날 행사를 통해 민족의식이 고취되는 게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1937년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금지한데 이어 1938년에는 어린이날 자체를 폐지했다.

그리고 어린이날 대신 일본의 '유아애호주간'을 따르도록 했다.

유아애호주간은 어린이의 자유롭고 행복할 권리를 강조한 어린이날과는 달리 씩씩하고 건강한 신체를 갖고 믿음직한 황국신민으로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어린이날은 해방 이후 다시 어린이들 곁으로 돌아왔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1946년 일제 탄압으로 중단된 어린이날을 부활시켰고, 이때부터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지정됐다.

또 1975년에는 공휴일로 지정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마차 타고 떠난 방정환…그가 부탁한 어린이는 지금

일제의 어린이날 핍박이 극에 달했던 1931년 당시 방정환은 평소 앓고 있던 지병에 화병까지 겹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그가 아꼈던 '개벽' 판매조직 와해가 영향을 미쳤다.

결국 방정환은 그해 7월 23일 향년 33세에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방정환은 임종을 지키는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문간에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으니 이제는 가야겠어. 어린이를 부탁한다."

마지막까지 어린이를 부탁했던 소파 방정환, 지금의 어린이는 그의 부탁대로 자유롭고 행복한 권리를 누리고 있을까.

모순되게도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이 만들어지고 어린이 인권선언이 선포된 대한민국 어린이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였다.

한국방정환재단이 지난 2일 발표한 '2016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22개 가입국 중 꼴찌로 나타났다.

2009년 조사 이후 6년간 꼴찌를 이어오다 지난해 19위까지 올라섰지만 1년 만에 다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다.

자살 충동을 경험한 어린이·청소년은 5명 중 1명꼴이었고 초등학생의 경우 지난해보다 3.4% 늘어난 17.7%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서울 종로구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기념비. 2016.05.04 정상훈 기자 (서울=포커스뉴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난지잔디광장에서 2016 마포어린이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버블쇼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6.05.04 김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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