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新朴)' 원유철…공천 둘러싸고 김무성과 갈등 최고조
'대패'한 새누리…'원유철 비대위' 둘러싸고 계파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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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에 잠긴 원유철 |
(서울=포커스뉴스) "가장 마음이 고통스러웠던 건 부족한 저를 정책위의장에서 원내대표로 합의추대 해줬던 순간들이다. 공천 과정 막바지에 정말 심각한 갈등 속에서 어떻게든지 봉합시키려고 하는 제 노력들이 순간순간 수포로 돌아가고 성과를 못 낼 때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얘기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의 침묵 후 천천히 나온 말들에서도 고뇌와 고민이 느껴졌다. 새누리당 원유철 대표 권한대행은 쉬지 않고 달려온 지난 15개월을 뒤돌아보며 "이 두 지점에서는 제가 인간적으로 심적 고통이 굉장히 심했다"고 털어놓았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원유철 대행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재한 당 원내대책회의를 끝으로 원내대표로서의 공식 업무를 마무리했다.
원 대행은 회의 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해 2월 정책위의장을 시작으로 원내대표, 최근 대표 권한대행에 이르기까지 15개월 동안 정말 파란만장했고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다"며 "저는 이제 새누리당 평의원으로 돌아가 당과 국가를 위한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원내대표' 된 사연
원유철 대행의 '파란만장하고 다사다난한 시간'은 지난해 2월 시작됐다.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려던 유승민 의원이 4선 의원이던 원 대행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한 것.
팀을 이룬 두 사람은 '기호1번'을 달고 "지금 바로 결단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미래는 어둡다"며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 출마했다. 이들은 자타공인 '비박계'의 대표주자로 나섰다. 경쟁자는 '친박'으로 똘똘 뭉친 이주영-홍문종 조합.
경선은 당 소속 의원 149명이 참석한 의원총회에서 투표로 치러졌다. 결과는 84대 65. 유승민-원유철 조는 이주영-홍문종 조를 19표 차로 누르고 새누리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에 확정됐다.
그러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원내 상사'인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와의 갈등 끝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것.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8일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새누리당 의원총회 결과를 수용해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원내대표 자리가 비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새누리당은 차기 원내대표를 합의추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가 공석일 경우 일주일 안에 새 원내대표를 선출해야 하기 때문. 유 의원이 8일 사퇴했기 때문에 일주일 뒤인 15일까진 차기 원내대표가 결정돼야 해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당시 김무성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들은 차기 원내대표 후보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내걸었다. 2016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민심 풍향계'인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일 것과 계파색이 옅은 인물일 것. 이 조건에 딱 맞는 인물이 바로 원 대행이었다.
원유철 대행과 그의 짝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각각 단독으로 원내대표-정책위의장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당초 심재철 의원 등 일부 중진 의원들이 원내대표 경선에 참여하겠단 뜻을 밝혔으나 차기 원내대표를 합의추대하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의사를 철회했다.
이로써 원유철-김정훈 조합은 지난해 7월14일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차기 원내지도부로 합의 추대됐다. 결과적으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였던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원내대표 바통'을 이어받은 셈.
당시 이 두 사람을 두고 "수도권 원내대표와 영남권 정책위의장이 짝을 이뤘다"며 "계파색이 옅어 친박-비박의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 '신박(新朴)' 원유철…공천 둘러싸고 김무성과 갈등 최고조
그러나 원내대표가 된 원유철 대행은 점점 청와대와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같은 해 10월 국회에서 가진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선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가까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신박(新朴)'이란 별명을 "기꺼이 수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원 대행은 "당내 화합과 당청 관계에 힘을 모아 국정과제를 잘 처리해가면 국민들에게 더 큰 신뢰와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신박이라 하면 저는 기꺼이 수용하고 그렇게 불러주실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새누리라는 같은 뿌리에서 대통령도 의원도 나왔다. 당정청은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해 향후 청와대‧정부의 정책에 최대한 협조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때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원 대행의 '친박행보'는 새누리당의 4‧13 총선 공천과정에서 극에 달했다. 공천을 둘러싸고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와 '봉합 불가능한' 대립각을 형성한 것.
특히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을을 포함, 일부 지역의 공천에 불만을 품은 김무성 전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표명하자 원 대행은 원내대표실에서 친박계 최고위원들과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와 원 대행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건 이른바 '옥새 파동'. 최고위 소집권을 가진 김 전 대표가 지난 3월24일 "후보 등록일이 끝나는 25일까지 당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갔다. 곧바로 원 대행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에 내려가 김무성 대표에게 회의 개최를 요청하겠다"고 말한 뒤 뒤따라 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자갈치시장에서 회 한 접시를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였지만 의견차를 쉽게 좁히지 못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김 전 대표가 의결을 보류한 지역구 6곳 중 3곳(대구 동갑, 대구 달성, 대구 수성을)에만 공천을 확정하고 대구 동을, 서울 은평을, 서울 송파을 등 나머지 3곳은 무공천 지역으로 남긴 채 총선에 임해야만 했다.
◆ '대패'한 새누리…'원유철 비대위' 둘러싼 계파 갈등
총선 후 새누리당이 받아 든 성적표는 가혹했다. 과반 의석 확보는 커녕 원내 제1당 수성에도 실패하며 16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 돌입하게 된 것.
김무성 전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들은 총선 다음날인 14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하고 원내대표인 원유철 대행을 비대위원장에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김 전 대표는 즉시 대표직을 내려놓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원유철 비대위'를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각각 찬성 대 반성으로 나뉘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다시 한 번 불거져 나온 당내 불협화음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박계 의원들은 "원 원내대표도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새 원내대표를 최단 기간 내에 선출해 비대위원장을 맡기고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며 '원유철 비대위'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정두원 의원은 "한번 간신은 영원한 간신"이라며 "(원유철 대행은) 권력을 위해 가장 입안의 혀처럼 군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꼬기도 했다.
친박계 유기준 의원 등이 "당헌‧당규에 따르면 (비대위원장은) 현재 원내대표가 하도록 돼 있다"며 "(원유철 비대위는) 당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한시적인 체제"라고 맞섰지만 당내 갈등이 쉽사리 진화되지 않았다.
그러자 원 대행이 "나도 고통스럽다. 나라고 책임이 없고 이 자리를 하고 싶겠나"라면서도 "그러나 내가 손을 놓으면 우리 당은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다 사퇴하는데 권한 대행인 원내대표마저 손을 놓는다고 하면 법적으로는 문 닫는 것"이라고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당내 계파간 갈등이 잠잠해지지 않자 원유철 대행은 결국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는 "제가 법적으로는 비대위원장이 아니다. 합의 추대해서 내정만 한 상태"라며 "공식적으로는 대표 권한대행"이라고 자신의 공식 직위를 직접 확인했다.
새 원내대표가 선출될 3일 새누리당 당선인 총회를 하루 앞두고 원 대행은 "20대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책임지고 같이 물러났어야 했는데 당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과 책임감으로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며 총선 후 방향을 잃은 새누리당을 이끌고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또 "당이 깨질 수 있었던 어려운 시간에 부족한 제가 원내대표라는 막중한 자리에 합의추대 돼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임기를 시작한 기억이 새롭다"면서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 민생 원내대표가 되겠단 각오로 노력해왔지만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지난 임기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원 대행은 "저는 제가 원내대표로서 서 있어야 할 위치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왔고, 그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던 시간들"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20대 국회에서는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화두가 정의될 때까지 더 반성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려고 한다. 정말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결심하도록 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직'을 내려놓고 평의원으로 돌아온 그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원유철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마지막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16.05.02 김흥구 기자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9일 오후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부친 故 유수호 전 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영상캡쳐> 2015.11.09 김용우 기자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안에 반발해 최고위원회의 소집을 거부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설득에 나선 원유철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6.03.24 김인철 기자 원유철(앞줄 오른쪽 세번째)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제20대 총선 당선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해,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2016.04.26 박철중 기자 원유철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권한대행을 비롯한 원내대표단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마지막 원내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2016.05.02 김흥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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