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조 10년…"우리 영화는 아직 미완성, 해피엔딩 기대해달라"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5-01 08: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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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출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인 권리 찾고자 10년 노력"

'4대 보험 적용', '표준 근로계약서 사용' 등 성과 끌어내

영화인신문고 운영하며 억울한 영화인 구제하는 역할도

영화 노동자 "노조 덕에 근로 환경 개선…아직도 아
△ 영화 촬영 현장

(서울=포커스뉴스) '연간 평균 소득 1445만원', '한 주간 총 노동시간 71.8시간'

2015년 3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나타난 영화인들의 현실은 그들이 만드는 화려한 영화와는 사뭇 달랐다.

감독·촬영감독·제작자 등 주요 제작진을 제외한 대다수 보조 스태프들은 높은 업무 강도, 긴 근로 시간, 낮은 임금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근로기준법이 명시하고 있는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언론은 '4인 가족 기준 최저생활비'나 '기타 아르바이트 소득' 등을 들어 영화계의 낙후된 근로환경을 연일 질타했고 이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찼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희망을 노래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 소속 조합원들이다.

지난 10여년 간 영화노조는 3만여 영화 노동자(2015년 3분기 기준)들을 대변하는 유일한 노조로서 촬영 환경 개선과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활동했고 의미 있는 변화들을 끌어냈다.

2016년, 영화 노동자들의 삶은 과연 달라졌을까?

5월1일 노동자의 날을 맞아 영화노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노조 출범 10년…"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이제는 희망 이야기하고 싶어"

"항상 기자들이 찾아오면 얼마나 힘든지만 묻는다. 약간 불쌍한 시선으로…우리는 동정받고 싶은 게 아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안병호 영화노조 위원장은 실로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했노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답답한 현실을 개탄하기보다는 앞으로의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안 위원장은 "적어도 지금은 일주일에 하루는 쉰다. 이게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쉬는 날'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며 "24시간, 48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평균 13시간 정도 촬영한다.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노동 조건들이 개선되고 있다"며 달라진 풍토를 설명했다.

고질적인 병폐로 늘 지적받아온 보조 스태프의 낮은 임금 문제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에는 월급도 없어서 계약금과 잔금 형태로 두 번 나눠 받았다. 일하는 시간에 따라 급여를 정산받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제작사들이 마음 놓고 노동자들을 부려먹었다"며 "지금은 대부분 월급 형태로 받는다. 여전히 연장·휴일·야간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는 곳이 많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노조가 지난 2005년부터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 사용자 단체들과 끈질긴 협상을 하며 얻어낸 결과물이다.

영화노조는 2012년부터 매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진행하며 근로조건 개선을 도모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3차례에 걸친 '한국영화산업 노사정 이행협약'을 통해 4대 보험 적용, 표준 근로계약서 사용, 1일 12시간 근로 원칙 제정, 표준임금 지침 공시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01년부터 영화 일을 했다는 안 위원장은 지나치게 긴 근로 시간과 과중한 노동 강도 때문에 매일 혹사 당하는 느낌을 받았노라고 했다.

오로지 영화 자체만을 위할 뿐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던 노동 현장은 그가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영화노조는 안 위원장처럼 불합리한 노동 조건에 지친 보조 스태프들이 한둘씩 모이면서 결성됐다.

출발은 미미했다. 워낙 업계가 좁은 데다 노동자들끼리 인적망으로 강하게 연결돼있는 영화계의 특성상 자칫 '문제아'로 찍혔다간 계속 일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탓이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적었고 결국 노조는 오랜 기간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안 위원장은 "심지어는 블랙리스트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사람이랑 일하면 피곤하니 알아서 피해가라는 뜻이다.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이런 비인간적 환경에 질려 많이들 떠나갔다"며 "영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노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억울한 일을 당하셨다고요? 영화인신문고로 찾아오세요"

안 위원장은 영화노조가 중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영화인신문고'를 운영하는 일이라고 했다.

영화노조보다도 먼저인 2001년 개설된 영화인신문고는 일종의 고충처리 신고소로 '임금체납', '산업재해', '부당해고' 등을 겪는 영화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홍태화 영화신문고 사무국장에게 들은 피해 구제 사례들은 다양했다.

시나리오를 쓰고도 각본료를 받지 못한 작가부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블록버스터 영화의 촬영팀으로 일하고도 500만원 가량 되는 추가 임금을 받지 못한 스태프, 감독으로부터 허구한 날 폭언·폭행에 시달려야 했던 어느 분장팀장의 이야기까지 수많은 억울한 사연들이 영화인신문고로 접수되고 있었다.

홍 사무국장은 "임금체납을 경험한 스태프 중 잔금을 못 받는 경우가 47.9%,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례도 20.7%에 이른다. 문제는 이런 피해를 보고도 임금을 받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76.2%에 달한다는 것"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이런 피해를 노동자들이 스스로 감수해버리면 또 다른 피해자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사용자는 영화 산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인신문고는 현재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천한 3명과 법률자문 변호사, 노무사로 구성된 중재위원회를 통해 영화 노동자들로부터 신청받은 피해 사례를 해결하고 있다.

안병호 영화노조 위원장은 "과거보다 영화인신문고를 통해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영화 노동자들이 많이 늘었다. 분쟁이 확대되지 않고 조기 종결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영화 산업 노동자 이야기 직접 들어보니…"이젠 좀 할 만해요"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근로 환경의 변화를 조금은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상업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H(28)씨는 "과거에 비해 나아진 것만은 확실하다. 2008년만 해도 두 달에 100만원을 받았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요즘은 막내급도 한 달에 150만원 정도는 받고 있다"며 "표준근로계약서도 많이 쓰는 추세고 4대 보험도 들고 있다. 이 정도면 그래도 할만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H씨는 현재 영화노조 조합원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노조의 혜택을 보고 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노조에서 정기적으로 회의도 열고 토론도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능별로 구성된 개별 단체들과도 만나서 목소리도 대신 전달해 준다. 영화산업이 워낙 네트워크가 강하고 이합집산이 빈번한 곳이라 아직도 노조의 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영화 노동자로서 느끼는 아쉬운 점도 털어놨다.

그는 "영화노조가 제작사들과 맺는 협약이 강제성이 없다 보니 이를 무시하는 영화 현장이 아직도 많다"며 "엄연히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는데도 이를 대놓고 무시하는 악덕 제작사들을 실질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안병호 영화노조 위원장 역시 이런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노조의 활동에 대해 자평해 달라는 질문에 그는 "반반"이라며 "계속해서 환경이 나아지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드는 데 영화노조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이 남아있다. 임금 체계도 개편해야 하고 사용자 단체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일도 계속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요즘에는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어떻게 하면 영화 노동자들에 노조의 존재를 더 많이 알리고 참여하게 하느냐의 문제"라며 "궁극적으로는 영화인들이 영화노조를 기댈 수 있는 조직으로 인식해 주길 바란다. 함께 연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보조 스태프들의 모습.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서울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사무실에서 안병호 영화노조 위원장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서울 중구 충무로 2가에 있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사무실 입구. 이곳 사무실에서 영화인 고충처리 신고소인 '영화인신문고'도 운영하고 있다.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영화 촬영 현장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 노동자들의 모습.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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