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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법원 ver.1 |
(서울=포커스뉴스) "전문용어라 잘 모르겠습니다. 사전을 찾아보겠습니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간부행세를 하며 국내 기업에서 수십억원대 사기를 친 혐의로 기소된 고려인 사건이 난관에 부딪혔다.
계약서 등 주요 증거물이 러시아 전문용어로 작성돼 재판부와 검찰, 피고인 측, 통역인이 사전까지 찾아가며 '해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문광섭)는 28일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국제 브로커 L(54)씨의 1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문제는 러시아 광산 사업과 관련한 서류증거가 제시되면서 발생했다.
전문용어로 작성된 증거에 대해 검찰이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고 통역인도 "처음 보는 단어"라며 난감해 했다.
결국, 피고인이 어눌한 한국어로 설명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주요 쟁점 사안이었던 L씨의 책임 범위를 확인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검찰이 제시한 번역본과 L씨 측 번역본의 내용이 다르자 재판부를 포함한 모두가 단어공부를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통역인이 사전을 검색해 뜻을 알려줬고 검찰은 이를 연필로 받아 적었다.
L씨에게 제기된 여러 공소사실 중 한 가지만 확인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이날 L씨 측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광산 사업 등 국내에서 투자받은 사업을 추진할 의사가 분명했고 로비자금을 담당했던 또다른 고려인 H씨가 잠적했기 때문에 본인이 기소됐다는 입장이다.
L씨의 변호인은 "H씨는 개인계좌로 돈을 받은 것이고 피고인은 피해회사가 현지에 설립한 자회사의 통장을 통해 돈을 받았다"면서 "H씨의 범행과는 무관하고 모든 자금 집행은 피해회사와 협의해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검찰 측은 "피고인은 주변인에게 'H씨가 받은 돈을 함께 받았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면서 "자신을 유엔인권가나 외교관으로 속이는 등 거짓말로 사기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L씨는 지난 2013년 2월쯤 사할린 광산개발 프로젝트를 따도록 도와주겠다며 자원개발업체 U사 대표 연모씨로부터 180만달러(20억4000만원)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 L씨는 러시아 국적의 다른 고려인인 H씨와 함께 '나는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아내가 수장인 단체에서 유엔 인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며 H씨는 전직 KGB(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 요원 출신'이라며 연씨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2개월 후 H씨가 잠적하자 L씨는 'H가 없어도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다. KGB를 통해 H를 잡으면 180만달러를 회수하도록 도와주겠다'며 60만달러(6억8000만원)를 연씨로부터 추가로 뜯어냈다.
L씨는 또 지난 2012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무역업체 대표 이모씨에게 '러시아 재향군인회 등을 대상으로 한 의료관광사업, 러시아·벨라루스 병원 설립사업 등을 함께 하자'고 속여 47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자신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인권보호위원회(CIPDH)의 유라시아국 부국장'이라고 소개한 L씨는 위원회에서 지급됐다는 군복 비슷한 제복을 입고 다니며 유엔 휘장과 비슷하게 디자인된 위원회 명의의 여권 등을 제시한 것으로 조사됐다.2015.08.27 조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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