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울림' 찾아 그림에 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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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포커스뉴스) "폭포수를 통해 내면의 물줄기 같은 것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현대 사회에서 복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정화가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여백이 될 수도 있고요."
전남 광주에 있는 송필용(57) 작가의 작업실 내부는 시리도록 푸른 폭포수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해 말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청류(淸流)'전에서 선보였던 작품 일부가 작업실 한쪽 면에 나란히 늘어서 있다. 위에서 아래로 굉음을 내며 수직 낙하하는 폭포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송 작가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 학사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석사를 마치고 1989년 담양에 둥지를 틀었다. 선비들이 머물며 꽃 피운 가사문화권 일대를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담양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 보관이 어려워 광주에 작업실을 얻어 두 곳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담양에 있는 작업실은 26년째 쓰고 있는 곳입니다. 처음엔 담양의 선비정신이 좋아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연구하다보니까 대나무를 많이 그리게 됐습니다. 마디마디 곧게 뻗어 올라가는 대나무의 정신성이 좋더라고요.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긴 해도 구부러지지 않잖아요. 담양에 400여년 된 매화들이 있는데 가끔 그리곤 합니다. 대나무나 매화, 소나무 같은 것들을 주로 물과 어우러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하 5·18운동)의 현장을 겪으며 대학을 다녔던 미술학도는 5·18운동이 끝난 뒤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군대에 다녀오고 서울에서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예술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방황하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국토 답사였다.
"여기저기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 답사하러 다녔습니다. 민중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으로요. 그러다가 땅의 역사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양 작업실에 들어가서 동학농민운동 이후 5·18운동까지 근 100년간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의 역사적인 의미를 담아서 그린 '땅의 역사'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담양에서 작업하면서 땅과 물을 연구하고 땅의 역사와 관련된 작업을 하던 와중에 1998년 금강산이 열렸다. 송 작가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금강산으로 향했다. 1999년 처음 금강산을 다녀 온 이후 20번 넘게 답사를 갔다. 사계절의 모습을 모두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금강산은 들어갈수록 산세가 아름다운 산입니다. 소리의 느낌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일단 동해안과 접해있기 때문에 물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비가 오다가 금방 개었다가 하면서 운무의 변화가 극적으로 펼쳐집니다. 구름과 바위와 폭포가 어우러져서 마치 연꽃이 피어난 것 같은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합니다. 그렇게 천변만화하는 운무의 변화가 금강산을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
평소 존경하던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와 '박연폭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금강산을 직접 마주한 송 작가는 곧 물의 흐름에 매료됐다. 그리고 송 작가만의 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금강산은 우리 땅의 정신성이 가장 잘 배어 있는 곳입니다.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을 통해 문예 붐을 일으켰던 곳이기도 하죠. 금강산을 답사하다보니 물의 흐름이 극적으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실적인 폭포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일반적인 폭포 그림이죠. 지금은 폭포 자체가 몸에서 소화되서 육화된 폭포와 폭포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송 작가의 최근 작품에서는 쏟아지는 폭포수와 포말(물이 다른 물이나 물체에 부딪쳐서 생기는 거품)이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심연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폭포수를 통해 내면의 물줄기를 읽어내는 그의 작품은 팍팍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숨길을 열어준다.
"자연만큼 큰 울림을 주는 게 없습니다. 영혼을 울리는 소리, 영혼의 울림 같은걸 찾아 담아내고 싶습니다. 영혼의 흐름을요. 초기에는 대상에 충실한 색을 썼습니다. 사유적인 마음의 깊이를 찾다보니 이제는 좀 단순화됐습니다. 담백화되고 있다고 할까요. 청색이나 흑색이 흰색과 어우러지면서 담백하게 나옵니다."
송 작가에게 '물'은 어떤 의미일까. "물을 그리다보니 물을 가만히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하는 사유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을 보며 뭔가를 늘 사유합니다. 물이 사유의 흐름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광주=포커스뉴스) 송필용 작가가 전남 광주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조승예 기자 sysy@focus.co.kr(광주=포커스뉴스) 전남 광주에 있는 송필용 작가의 작업실에 작업 도구들이 놓여있다. 조승예 기자 sysy@focus.co.kr(광주=포커스뉴스) 전남 광주에 있는 송필용 작가가의 작업실에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조승예 기자 sysy@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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