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내외에서 안중근 순국 106주기 추모식 거행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3-25 17: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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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대련서 추모식…안중근 유족들 참석
△ 1_안중근의사기념관.jpg

(서울=포커스뉴스) 국가보훈처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을 국내외에서 다채롭게 진행한다고 25일 밝했다.

안중근은 일제 강점기 중국 하얼빈에서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국내에서 거행되는 안중근 순국 106주기 추모식은 26일 오전 (사)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서울 남산공원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추모식에는 최완근 보훈처 차장과 유족인 황은주(안중근 외손녀)씨, 미국 시민권자인 토니 안(안중근 증손자, 한국명 안도용)씨, 안중근숭모회 회원, 일반 시민 등 4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안중근 순국지인 중국 대련에서도 추모행가가 개최된다. 대련의 구 여순형무소에서는 26일 오전 (사)한중친선협회와 대련한국인상회 공동주관으로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 교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가 진행된다.

이에 앞선 25일에는 해군사관학교에서도 해사박물관에 소장된 안중근 의사 유묵을 활용해 교정 내에 안중근 유묵비를 건립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듣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강구했다.

그는 부친상을 당한 뒤 자신의 재산으로 삼흥(三興)학교, 돈의(敦義)학교 등을 세워 인재교육에 힘쓰기도 했다.

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우리나라 국권이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안중근은 이범윤·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안중근은 1908년 의군장이 돼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한 뒤 경흥·회령 등지에서 대일항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을 만나 구국의 길을 강구했다.

1909년 봄에는 김기열, 백낙길, 박근식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을 맹세했다.

1909년 9월 일제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중국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안중근은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한다.

안중근은 의거 당일인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기다리다 9시30분께 기차에서 내려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명중시켰다. 당시 안중근은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러시아어로 “코레아우라(대한만세)”를 연호했다.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일본 감옥으로 이송된 안중근은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했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을 주장했다.

결국 안중근은 1910년 2월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다음 달인 3월26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하얼빈=포커스뉴스) 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 초상화.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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