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이태환-맹세창-이진성의 발견
(서울=포커스뉴스) 대부분 사람에게 '수색역'은 익숙하지 않은 역이다. 서울시 은평구 수색동에 있는 수색역은 경의·중앙선에서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화전역 사이에 있다. 서울의 끝자락에 있는 역이다. 인근에는 난지도라는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냄새나는 혐오지대 그곳에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수색역'은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기 힘든 자리에 있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그 동네도 눈길을 끈 적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그 인근 상암동에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기로 했을 때였다.
기대감이 높아졌고, 돈 많은 재개발업자가 발길을 들여놨다. 냄새나던 땅에 사람의 관심이 높아졌다. 갑작스러운 관심은 그 동네를 변화시킨다. 그곳에 살던 네 친구 윤석(맹세창 분), 상우(공명 분), 원선(이태환 분), 호영(이진성 분)도 예외는 아니다.
'수색역'은 한 사건을 중심으로 배치된다. 메인 포스터에 나와 있는 것처럼 원선(이태환 분)이가 상우(공명 분)의 도발로 불광천 아래로 떨어진 일이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하지만 전과 후는 달라진다. 사건의 전에는 "같이 싸우고 해도 뒤엉켜 있는 게 우정 이라고 생각한" 네 친구가 있고, 후에는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네 친구가 있다.
상우는 원선이를 그렇게 만들고도 자신의 삶을 산다. 처음에는 스스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간다. 상우는 원선이가 일하던 곳에서 일하고, 원선이가 타던 차를 갖게 된다. 자신도 일하게 되고, 여자도 생기고, 원선에게 가졌던 처음의 '미안한 마음'은 점점 흐려진다. 그래서 그를 보는 이들은 호영(이진성 분)의 말처럼 "뭐하냐, 저 XX 진짜 답도 없다"는 마음이 든다.
스크린 밖 관객도 상우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친구 뒤통수를 치고, 자기 욕심만 채우고, 매일 같이 술이나 먹고, 다치기나 하는 그런 아이. 연민 따위도 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상우와 비슷한 면을 찾기 어려운데, 점점 상우의 모습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뭐 괜찮은 줄 아냐"는 외침, "나도 XX게 슬퍼"라며 혼자 우는 모습, "나한테 뭘 바라, 나도 미치겠는데"라고 내뱉은 울분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혼자였던 때가 있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수색역'을 통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굳이 친구의 뒤통수를 치고, 매일같이 다치며 살지 않아도, 사람들을 상처를 가지고 산다.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아"라는 상우의 울먹임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땅 '수색역'같이, 그리고 '어느 때'의 자기 자신의 모습과 같이 애틋함을 더한다.
'수색역'은 독특한 시선과 배우들의 발견이라는 면에서 독립영화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영화 속 몇몇 장면은 기성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화면이다. 뒤엉켜 놀던 네 친구의 모습은 특정 인물의 클로즈업을 생략한다. 대신 네 사람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가득 화면에 담아낸다. 또한, 손의 온기로 눈을 치워내며 차 안을 들여다보는 원선이의 모습은 영화의 의미를 더하는 명장면 중 하나.
배우들은 익숙하지 않은 날 것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크다. 공명과 이태환은 서강준, 유일, 강태오가 함께 소속된 배우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다. '수색역'은 공명과 이태환이 웹드라마 '방과후 복불복'(2013년) 이후 첫 작품이다. 하지만 미숙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처음이기에 내뱉을 수 있는 폭은 크다.
공명은 상우 역을 맡아 그대로 아프고, 소리 지르고, 맞고,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발산한다. 이태환은 '수색역'을 통해 삭발 연기와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경험까지 가리지 않았다. 원선의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선택이었다. 3년 동안 각자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공명과 이태환이다. 하지만 '수색역'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이들을 다르게 보게 될 것.
맹세창, 이진성은 영화를 튼튼한 기둥이 됐다. 맹세창은 '수색역'에서 땅 같은 역할을 한다. 그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오가는 사람은 달라지지만, 땅은 그대로다. 맹세창은 상우와 원선이 마음껏 구를 수 있도록 기꺼이 땅이 되어준다.
반면, 이진성은 관객과 가장 가까이에 서 있다. 대학 시절부터 연기를 전공해 단편영화, 독립영화 등에서 단역과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연기력을 쌓아온 그다. 이진성은 가장 극적인 인물과 일반 관객 사이의 차이를 자연스레 줄여준다. 차지도 넘치지도 않은 두 사람의 열연이 '수색역'에서 중요한 위치였던 이유다.
'수색역'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 최승연 감독의 데뷔작이다. 실제 수색역 근처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감독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쓴 것부터 개봉까지는 무려 5년이 걸렸다. 힘든 시간이었다.
이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색역'이 "관심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은 어떤 성장을 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영화다. '수색역'이 작은 의미로 남아, 누군가에게 어떤 대화라도 오가는 영화로 기억됐으면"하는 바람을 덧붙였다.
만약에 '수색역'이 어떤 영화냐고 물으면, 좁은 골목을 세네 번 돌아서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 초라하지만 굉장한 맛집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날 것 그대로인 청춘의 맛은 오는 3월 31일 개봉하는 영화 '수색역'에 담겨있다. 상영시간 112분.공명, 이태환, 맹세창, 이진성이 열연한 영화 '수색역'. 사진은 '수색역' 메인포스터. <사진제공=만화경>공명은 영화 '수색역'에서 상우 역을 맡아 열연했다. 사진은 '수색역' 스틸컷. <사진제공=만화경>영화 '수색역'에서 열연한 공명, 이태환, 이진성, 맹세창(좌측 상단부터 시계순서)의 모습. 사진은 '수색역' 스틸컷. <사진제공=만화경>'수색역'에서 열연한 이태환, 이진성, 공명, 맹세창(좌측부터). 사진은 '수색역' 스틸컷. <사진제공=만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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