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4·13 르포> 영·호남 '화합' 아닌 '갈등'의 현장…화개장터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3-20 20: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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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화재 사건 이후 만연한 지역간 불신

"전라도 상인들 나가라" 소문의 진실은

화개장터 인접 하동·광양·구례, 정치색은 천차만별

남해와 선거구 묶인 하동 "우리 지역 출신 정치인 돼야"

(하동=포커스뉴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중략)/ 경상도 사투리에 전라도 사투리가/ 오순도순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고운정 미운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가수 조영남씨의 히트곡인 '화개장터'의 노랫말 일부다.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화개장터는 대한민국 지역감정의 두 주체였던 영호남이 통합을 이루는 장으로 통한다. 행정구역상 경남 하동에 위치해있지만 구례군과 광양시 등 전라남도 인근 주민들의 생활권과도 가까이 위치해있다.

하지만 노랫말과 요즘 장터의 현실은 사뭇 달랐다. <포커스뉴스>가 17일 찾은 화개장터는 '영·호남 통합의 장'이라는 수식어에도 불구, 통합 보다는 갈등이 심각한 현장이었다. 오는 4월 13일 치러지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영·호남 간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색이 화개장터라는 공동의 장을 통해 어떻게 합쳐지는 지를 살피려했지만 융합은 커녕 내부 갈등만이 팽배한 모양새였다.

◆ 영·호남 화합의 모습은 안보이고 내부 갈등

지금의 화개장터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재래시장의 모습은 아니다. 지난 2014년 11월 발생한 화재로 인해 과거의 장터는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이 돼 있었다. 하동군 소유 상점이 중심부에 모여 있고 개인이 소유한 점포가 이를 둘러싼 형태였으며 주요 건물들 모두 민속촌이나 드라마 세트장을 연상케 했다.

화개장터의 내부 갈등은 화재 발생 이후, 하동군의 입점자 선정 기준이 발단이었다. 하동군의 입점자 선정에 일부 지역 상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화재로 한옥형태의 상점 40여 곳이 불에 탔고 하동군은 25억원의 예산을 들여 한옥형태의 상점 82곳을 마련하면서 올해 1월 새 입점자를 선정했는데 지난 2008년에 만든 '화개장터 운영규정'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규정에 따르면 '하동군에서 3년 이상 실제 거주해야 입점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같은 방침으로 호남 상인 일부가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생계에 위협을 느낀 이들은 "지금까지 영업을 허용해놓고 새 점포가 마련되자 추첨 기회조차 주지 않고 우리를 외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물론 입점 희망자에 비해 적은 수로 꾸려진 점포로 하동군민 가운데서도 4명이 사전 탈락 했고 이후 12명이 추첨에서 떨어져 장사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렇지만 전남 지역에선 하동군민에게만 입점을 허가하고 타지역 상인들을 배제하는 것은 동서 화합의 장이라는 화개장터의 취지에 역행한다고 반발했다.

비난이 빗발치자 하동군은 결국, 광양시에 2곳, 구례군에 1곳의 점포를 각각 배정했고 전남지역 상인 4명이 3곳의 상점에서 지역특산물을 판매하거나 호떡 등 먹거리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뒤 조금의 시간이 지났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들 지역상인들 간 불신이 가득한 상황이다. 사유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 김모씨는 "여기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은 다 나가라고 했던 것"이라면서 "예전 화장실 자리를 새로 리모델링했는데 그곳에 전라도 사람 몇 사람이 들어가 있다"고 현재의 상황을 전했다.

전남 구례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상인은 "전라도 상인들끼리는 잘 통한다. (우리는) 한편이야 한편"이라며 "(원래 하동군민들과도) 친하게는 지냈는데 저번에 그 일(하동군 입점자 선정) 이후 내가 언론 인터뷰를 했다고 나를 막 욕하더라고"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세상에 그렇게 차별하고 자기들끼리는 뭉치고"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하동지역에 거주하는 상인들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여기서 장사를 할 때는 일단은 하동군이니까 위장전입을 하지 말고 정당하게 장사를 하자는 것이지 전라도 사람들을 쫒아내자는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뿌리공예점을 운영하는 김재명(66)씨 역시 "영호남 호합이 잘 되고 있는데 장터 복원 이후 서로 간에 조금 안 좋은 인상이 있었어요"라며 "하동주민들은 왜 저 사람들(전라도 상인들)은 장터를 설립하는데 예산 투입을 아무것도 없으면서 여기에 와서 돈을 벌고 가느냐는 원성이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김씨는 이어 "사람들이 서로 입점을 하려고 하는데 일부 사람들이 '왜 전라도 사람들은 (입점권을) 주고 우리는 못 주느냐'고 하는데 그들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라면서 "쉽게 말해서 (화개장터에서 장사를 하려면) 정상적으로 하동에서 생활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고 돈을 여기서 벌었으면 여기서 돈을 쓰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영·호남 갈등 우려 목소리도 많아

영·호남 화합의 장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화개장터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양측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호떡을 부치던 김인태(58)씨는 "여기는 지역감정이고 다 그런 것 없다"며 "밖에서 정치인들이 다 만든 것이지"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들은 '영남이다' '호남이다' 하는 것은 모두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14년 전 부산에서 하동으로 귀촌을 했다는 김미숙(59·여)씨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전라도가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라며 "화개장터가 동서화합의 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만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희망했다.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던 김금자(65·여)씨도 "방송에서 전라도 사람들 쫒아내고 경상도 사람만 (장사를) 한다고 나왔는데 그건 아니다"며 "화합의 장터이기에 지역감정을 떠나 하나로 뭉쳐야 된다"고 말했다.

◆ PK는 PK·전남은 전남…지지정당도 '제각각'

현재 화계장터에 호남권 상인들이 현저하게 줄었지만 하동군과 구례군, 광양시는 인접해있기에 왕래도 잦은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권이 겹쳐 있다고 해도 이들 지역의 정치색은 하늘과 땅 차이로 극명하게 갈렸다.

이런 가운데 화개장터는 양 지역의 여론이 오가고 있기에 다른 곳의 정치색도 빨아들이는 융합의 장소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개장터 내에서도 각 지역내 고유의 정치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즉, 'PK(부산·경남)는 PK, 전남은 전남'이었다.

화개장터에서 만난 다수의 하동군민들은 지금까지의 지지정당은 새누리당이었다고 했으며 일부 만날 수 있었던 전남권 주민들은 야권 성향이 강했다.

하동에서 태어난 본토박이 김인태(58)씨는 "아무래도 뭐 여기 동네 자체가 보수쪽이 좀 강한 동네"라고 했으며 튀김을 튀기던 황수이(65·여)씨는 "그간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김민재(59)씨 역시 "여기는 새누리당 텃밭"이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구례 출신의 일부 상인들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무래도 이쪽이랑 저쪽(하동)이랑은 정치색이 조금 다르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바쁜 일상생활 속에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인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지지정당을 물으면 상당수가 "정치에 관심없다" "지지하는 정당은 없어"라고 답을 해왔다.

김인태씨는 "새누리당이나 야당이나 다 평이 안좋지. 다 시원찮아가지고 찍어주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어"라고 했으며 황수이씨 역시 "이번에는 잘 모르겠어"라면서 "이번 선거에 누가 나오는지 바빠서 지금은 잘 모르겠고 생각중이야"라고 지지정당을 고민중이라고 했다.

김민재씨도 "새누리당이나 야당이나 다 평이 안 좋지. 다 시원찮아가지고 찍어주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어"라고 답했다.

◆ '무조건 새누리당' 정서 점점 식어가

이날 가장 많이 만났던 하동군민들의 경우 새누리당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모습이었다. 새누리당을 지지했었다고 밝힌 주민들 다수가 이번 선거와 관련해선 "지지를 해봤자 뭐하느냐"라며 퉁명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이유에 대해 "정치인들이 자기들 밥그릇 가지고만 싸운다" "처음에 나올 때하고 이후가 다르다" "자기들 자리에만 연연하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는 더불어민주당 또는 국민의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사람들도 있었다. 오뎅을 만들고 있던 박모씨는 "국민의당을 지지한다"며 "요즘 안철수 대표 지지율이 좀 떨어진다고들 보던데 그래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하동주민이라고 밝힌 성모(45·여)씨도 "민주당에 기대를 하고 있다"며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아직 기대만큼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영·호남 통합의 상징…여론 교환 창고

<포커스뉴스>가 찾은 화개장터는 경남 하동군과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의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속해 있다.

이 지역은 지리산 영신봉에서 발원한 화개천(花開川)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인데 과거 섬진강의 가항종점(可航終點)으로서 행상선(行商船)이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상류의 지점이었다. 이 같은 특성 탓에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내륙에서 생산된 임산물과 농산물, 남해에서 생산된 해산물 등을 교환하는 장터가 형성됐다.

언제부터 장터가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에 오일장이 섰다는 기록이 있다. 또 다른 시장에 비하여 규모도 커서 한때는 거래량이 전국에서 7위에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의 화개장터는 하동군청이 주관하여 1997년부터 4년에 걸쳐 복원한 것으로, 2001년 9월 상설 관광형 시장으로 개장한 뒤 하동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화개장터는 영·호남이 교류하는 장터이기에 양 지역의 여론이 오가는 창구였다. 화개장터를 통해 타지역의 소식들이 전달되고 여론이 만들어졌다.

화계장터는 지금은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통한다. 물류가 교환되고 양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남의 터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다만 최근 파열음이 생기면서 갈등이 일기도 하면서 아직 앙금이 조금은 남아있는 상황이다.

◆ 역대 선거, 새누리 텃밭에 소지역주의 '활개'

화개장터가 위치한 하동의 경우 새누리당의 텃밭이다. 반대로 인근의 광양시와 구례군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강세 지역이다.

하동은 경남 사천시와 남해군과 함께 한 곳의 선거구로 이뤄졌다.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의 국회의원은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이다. 여 의원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하동지역에서만 80.41%의 몰표를 받았다. 새누리당은 같은 선거에서 62.14%의 지지를 받았었다.

18대 대선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65.29%,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33.45%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반해 광양과 구례의 현역 국회의원은 우윤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광양과 구례에서 각각 84.88%, 86.66%를 얻었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들 지역에서 14.72%, 12.60%에 그쳤다.

하동과 광양, 구례가 인접해있고 왕래가 잦더라도 정치색은 선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 하동의 경우 새누리당 텃밭이면서도 소지역주의가 존재하고 있다. 같은 선거구로 묶인 남해군과의 경쟁구도는 한국과 일본의 스포츠 경기에서 볼 수 있는 라이벌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하동은 한동안 남해에 밀려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을 배출해내지 못했다. 13대부터 17대까지 남해 출신 국회의원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5선을 내리했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하동 지역 출신인 여상규 의원이 당선, 23년 만에 하동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해냈다.

소지역주의가 극심한 것은 18대 총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하동에선 새누리당 여상규 후보가 남해 출신으로는 참여정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던 김두관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는데 이들 지역에선 지역 출신 후보들에게 몰표를 안겨주면서 뜨거운 경쟁을 펼쳤다.

화개장터가 위치한 하동, 그리고 인근의 구례, 광양지역의 경우 이번 총선에서도 큰 이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화개장터가 내부 갈등을 털어내고 극단적으로 갈린 양쪽의 정치색을 조금씩 섞어, 대립보다는 융합하는 역할을 해야 동서화합의 장이라는 상징성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경남 하동군에 위치한 화개장터 정문 모습. <사진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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