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發 야권 정계개편 지지 만연…기대치는 최근 다소 하락
광주민심, 문재인에 대한 기대 접고 분노감 표출
광주 떠난 이정현에 대한 그리움도 엿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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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광주의 분열’-지역구 국회의원 8인의 현주소 |
(광주=포커스뉴스) 야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단연코 '호남민심'이다. 그 누구도 이를 거부하긴 힘들다. 호남민심에 역행했을 때는 반드시 역풍을 맞았다. 야권의 대선주자 또는 당권을 손에 쥐고 있는 이들 역시 호남민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호남민심을 이끄는 지역은 민주화의 성지이자 야성(野城)인 광주광역시다. 광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호남민심이 전·남북으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타지역에 거주하는 호남 출신 출향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광주가 호남민심의 심장이자 야권의 주인임을 잘 보여준 사례가 지난 2002년 있었던 광주 경선이다. 당시 야당인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광주가 지지세력 없고 인지도 낮았던 비주류 노무현을 택하는 순간이 바로 '대통령 노무현'의 시작이었다.
광주민심이 최근 요동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을 탈당하고 나온 안철수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세가 심상치 않다. 호남권을 두고 국민의당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더불어민주당은 광주를 향해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부르짖고 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광주민심을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일 총선을 앞두고 16일 광주 최대시장 양동시장을 찾았다. 호남 여론의 '창'인 양동시장에선 더민주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실망감과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안철수 돌풍의 실체도 엿볼 수 있었다.
◆ "기댈 데가 국민의당 밖에 없어부러"
양동시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에 대한 기대와 지지의사를 내비쳤다. 이들은 대개 옛 민주당 지지자 출신이었다.
양동시장에서 어묵을 만들고 있던 김용길(62)씨는 "지금 새롭게 나오는 국민의당을 믿는거여"라고 했다.
식료품을 판매하던 장일숙(52·여)씨도 안철수 대표에 대해 "지지하는 편이야"라고 답하면서 "(야권이) 조금 바뀌어야 되지 않겠어요? 혁신이 좀 필요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장을 보러 양동시장을 찾은 김현숙(가명·41·여)씨는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민주당을 긴 세월동안 지지를 했는데 별게 없다"고 했다. 그는 "국민의당 밖에는 기댈 데가 없어부러.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기댈 데가 거기밖에 없어부러"라고 말했다.
가구점을 운영하는 한재종(42)씨는 "우리가 요구하는 부분들이 거의 비슷할 텐데 실질적으로 와 닿는 부분들이 좀 미흡했던 것 때문에 국민의당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고 차분히 의견을 피력했다.
생닭을 손질하고 있던 김선(41·여)씨는 "정치가 새로 바뀌어야 될 것 같기에 국민의당은 새로운 희망"이라고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다.
저년 반찬거리를 사러 왔다는 김천희(47·여)씨는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찍었는데 이번에 실망을 좀 많이하기는 했고 국민의당을 찍을까 고민"이라고 지지정당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대한 비토가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양동시장 민심을 통해 이유는 대략적으로 두 가지로 읽혔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그간의 지지에도 불구, 지역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고 이는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진다는 점과 더민주의 전직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 탓이었다.
40년째 광주 운암동에 거주하면서 양동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명훈(70)씨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똑똑한 체를 허시고 아는 체를 많이 하시는데 되고 나서는 말이 없어"라며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선됐던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식료품점 앞에서 만난 장일숙(52·여)씨는 "항상 공약은 걸어놓고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양동시장에 장을 보러 온 김선자(57·여)씨는 "예전에는 민주당을 지지했는지 지금은 다 싫어"라며 "서로 밥그릇 싸움, 내 욕심 챙기려고 하는 것이니까 싫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청한 50대의 김모씨는 전라도의 대표 사투리인 '거시기'를 연달아 입에 담으면서 "이제는 바꿔야햐. 거시거 뭐시냐, 철수가 바꾼다고 나왔잖아. 한 번은 거시기(지지를) 해봐야것제"라면서 "(더민주 소속 국회의원들이) 중앙무대에 가서 민심을 전달하고 해야 하는디 아무 말 한마디 못하고 또 아무 빽도 없고"라고 꼬집었다.
김씨는 "지지를 해봤자 뭐햐.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어"라면서 "그러니깐 거시기 해야돼"라고 악다구니를 쳤다.
◆ 문재인 거부감…"문재인 땜시 거시기 지지해"
현재 더민주의 '얼굴'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다. 그렇지만 광주시민들은 더민주의 실질적인 얼굴을 문재인 전 대표로 인식했다. 문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은 더민주에 대한 민심 이탈로 이어지고 있었다.
카페에서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던 윤홍현(70·남)씨는 "문재인이 얼마나 호남사람들을 말살시켜버렸는데"라며 "나는 안철수도 싫어혀 근데 문재인 땜시 거시기 지지해"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있던 길부철(남·72)씨는 "밥 먹다가도 문재인이 티비에 나오면 숟가락 던져불고 싶어"라며 "그 전에는 호남 정서로 볼 때 아무래도 민주당 정서제. 그런데 현재 민주당은 문재인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당을 지지해"라고 문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길씨는 "안철수가 호남의 긍지를 살린다면, 광주의 자존심을 살린다면 미워도 안철수"라고 강조했다.
건어물가계를 운영하는 이동환(71·남)씨는 "그 사람 때문에 야당이 흩어져버린 것 아녀?"라고 언성을 높이면서 "그리 안했으면 안철수도 안 나갔을건디"라며 야권 분열의 책임이 문 전 대표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 안철수에 대해 '불안감' 피력…기대 접는 이들도
이 같은 더민주 지지율 하락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안 대표에 호감을 드러내는 시민들은 상당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를 차츰 내려놓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불가게를 운영하는 남오성(66·남)씨는 "원래 민주당을 지지했고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은 하는데 요즘 정치가 다 개판 5분 전"이라며 "안철수 대표는 처음에는 참 좋았고 나은 것 같기도 하는데 정치를 별로 안 해봐서 그런지 그닥 뭐 마음에 들지는 않어"라고 말했다.
이동환씨는 "안철수가 보기에는 참 정직하고 괜찮은 것 같은디 워낙 거시기가 없어. 뒤에 밀어주는 사람도 없다"며 "그리고 요즘 하는 거 보니께는 어떻게 해 나갈란지 잘 몰라"라면서 최근 안 대표의 행보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방문, 일명 '노무현 국밥집'으로 통하는 하나분식의 남연희 대표(52·여)는 더민주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면서도 국민의당과 안 대표에 대한 엇갈린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그 분(안철수)은 공부를 하시던 분이라 이론적으로는 좀 강하실 것 같고 신인치고는 괜찮은 인물일 수도 있죠"라면서도 "정치를 하시려면 경험이 많은 분들의 조언을 무시하지 말고 정치 입문했을 때 마음이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새누리당은 싫지만 이정현은 호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광주·전남권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호남의 야당인 새누리당은 지지율이 차츰 오르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19대 총선을 통해 광주에서도 당선자를 배출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에 환희했다.2012년 총선 당시 광주 서을 선거구에 나섰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는 39.7%라는 득표율을 얻었다. 과거 한 자릿수에 머물던 새누리당 득표율을 생각해볼 때 정치권에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이정현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광주시민들은 전남 순천·곡성으로 옮겨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정현 의원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광주에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높은 지지세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한재종씨는 이정현 의원에 대해 "그 분이 워낙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내뱉은 말은 지키려고 하시던 분이라 (광주에) 팬이 광징히 많다"고 전했으며 이동환씨는 "이정현씨가 순천, 곡성쪽에 예산 많이 타가지고 왔다 그라드만"이라고 이 의원의 활동을 높게 평가했다.
김천희씨는 "이정현씨는 원래 광주에서 나오던 사람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유명하지 않느냐"고 이 의원에 대한 호감을 표했다.
광주시민들은 순천·곡성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정현 의원의 활동에 대해 호평하면서도 광주 선거구에서의 새누리당 후보자들 당선 여부는 회의적이었다. "언젠가 될 것 같기는 한데"라면서도 다수의 시민들은 "아직은 좀 멀었지"라는 답을 내놓았다.
◆ 호남 최대 양동시장…민주·진보진영 여론 창구
<포커스뉴스>가 16일 찾은 양동시장은 호남권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1910년대 광주교 아래 백사장에서 매달 2와 7이 들어가는 날에 열렸던 장이 기원인데, 일제강점기 때인 1940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지면적은 1만 563㎡, 건축면적은 1,253㎡이다. 건물은 4개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산물·수산물·공산품·기타 물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340여 개 있다. 특히 전국에서 유통되는 홍어의 90%를 양동시장이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양동시장은 민주·진보진영 여론 창구 역할도 한다. 광주의 구도심에 위치한 양동시장은 다수의 상인들과 장을 보던 이들이 넘쳐나 유동인구가 호남권에서 많은 곳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오랜 기간 광주를 지켜왔던 이들이 다수를 차지해 지역 여론의 발생지이자 민심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타지역의 주요 정치인들이 광주를 찾을 때 국립 5·18 민주묘지와 함께 반드시 찾아야 하는 대표 코스 가운데 한 곳이다. 대선주자급 인사들부터 시작해 각 정당의 지도부가 광주를 찾으면 양동시장은 빼놓지 않고 방문하고 있다.
◆ 1988년 이래 보수여당 '깃발' 허락 안한 유일 지역
광주지역 역대 선거를 보면 야권의 100% 승리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설 경우 승리가 보장되기는 하지만 종종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나서거나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에는 진보진영의 인사가 당선되기도 했다.
광주에는 총 8개의 선거구가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선 민주통합당(더민주 전신) 후보가 7곳에서 승리했으며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로 후보자를 내지 않았던 광주 서을에서만 민주당이 아닌 진보진영 후보가 당선됐다.
지난 18대 대선에선 타지역을 압도하는 몰표가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싹쓸이를 한 것이다 문 후보는 광주에서 91.97%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7.76%에 그쳤다.
역대 총선을 살펴봐도 야권의 대표적인 텃밭이었다. 야당 후보자들 입장에선 당내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이었다. 마치 올림픽 양궁 종목 처럼 국가대표만 되면 올림픽 금메달은 '따논 당상'이었다.
지난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래 광주에선 보수정당이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해낸 적이 한 차례도 없다. 전남에선 지난 2014년 순천·곡성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당선자로 만들었지만 광주시민들은 아직까지 보수정당 후보자들에게는 마음을 열지는 않고 있다.
광주·전남권에서 승리한 세력 위주로 야권발(發) 정계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야권 '텃밭'을 누가 차지할지가 이번 총선 최대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서울=포커스뉴스) 광주지역 현역의원 총 8명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은 강기정, 박혜자 의원 2명으로 국민의당 소속의원은 박주선, 천정배, 김동철, 임내현, 권은희, 장병완 의원 6명으로 나타났다. 2016.03.02 조숙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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