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울 유일한 무기 ‘교육’”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2-25 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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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정부의 휴교령에도 학교 운영 강행한 ‘뉴호프 아카데미’

‘뉴호프’ 이사장 아코이 “에볼라는 위험하지만 철저한 위생교육 통해 막을 수 있어”

한국 ADRF 도움으로 설립된 ‘뉴호프 아카데미’ 라이베리아 영향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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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에볼라 바이러스는 총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교육이다.”

지난 2014년 아프리카 대륙 서부에 위치한 라이베리아공화국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라이베리아 정부는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가 발견된 지역을 봉쇄했다.

봉쇄된 지역에 있던 한 소년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바리케이트를 벗어났다. 소년은 바리케이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군인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았고 잠시 후 숨을 거뒀다.

25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ADRF) 사무실에서 만난 라이베리아의 학교 ‘뉴호프 아카데미’ 이사장 어거스틴 아코이(Augustne s.arkoi)씨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교육’의 힘을 강조했다.

아코이씨의 기억 속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진 2014년의 라이베리아는 참혹했다.

아코이씨는 “기니에서 시작해 시에라리온을 거쳐 라이베리아에 들어온 에볼라 바이러스는 매우 빠르게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정부, 병원, 학교 등 라이베리아 전체가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사람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은 접촉도 피했다”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라이베리아 전부의 문제였다”고 전했다.

결국 라이베리아 정부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코이씨의 생각은 정부의 판단과 달랐다. 아코이씨는 오히려 학교에서 ‘위생교육’을 철저히 해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코이씨는 60~70%에 이르는 라이베리아 국민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점과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에볼라 바이러스를 퍼지게 했다고 믿었다.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으로 인해 국민들은 정부의 에볼라 바이러스 대책을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바라봤다.

또 글을 읽지 못해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교육도 체계적으로 할 수 없었다.

아코이씨는 정부의 휴교령에 따르지 않고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에서도 ‘뉴호프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다만 아코이씨는 5시간의 정규교육 중 2시간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위생교육으로 채웠다.

아코이씨는 위생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알리고 부모가 이웃에게 알리면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정부는 믿지 않았지만 자신의 아이 말을 믿었던 부모들은 위생을 철저히 하기 시작했고 에볼라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한 방법을 주변에도 알렸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는 상황에서도 ‘뉴호프 아카데미’에서는 학부모 한명만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숨을 거뒀다.

아코이씨는 정부와도 싸웠다. 아코이씨는 정부에 대해 ‘교육은 권리이며 교육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코이씨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위험하지만 위생교육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정부와 사회에 재차 밝혔다.

마침내 라이베리아 정부는 학교 휴교령을 철회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라이베리아에서 지난 42일간 에볼라 발병사례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의 에볼라 발병이 모두 종식됐다”고 지난달 14일(현지시각) 선언했다.

아코이씨는 우연한 계기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다.

1992년 라이베리아에서 합기도를 배우던 아코이씨는 당시 한국인이었던 합기도 사범의 소개로 한달간 한국을 다녀왔다.

이후 1995년 내전 중이던 라이베리아에서 자원봉사로 40명의 아이들에게 한국의 합기도를 가르치게 됐다.

자신이 합기도를 가르치던 아이들 중 25명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코이씨는 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칠판을 하나 샀다.

또 교사 훈련을 받은 자신의 친구에게 국제연합(UN)으로부터 배급받은 밀가루 한포대를 주며 아이들의 선생님이 돼 줄 것을 부탁했다.

한달쯤 지나자 학생은 100명이 돼 있었고 두달쯤 되자 200여명 학생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아코이씨는 ADRF의 도움을 받아 ‘뉴호프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1996년 라이베리아 정부로부터 정식허가도 받았다.

이후 아코이씨는 한국에서 공부를 하다 1999년 라이베리아로 돌아가 재정적 어려움으로 없어질 위기에 놓인 ‘뉴호프 아카데미’를 위해 일했다.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한 ‘뉴호프 아카데미’는 400명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무상교육을 시작해 점차 교육과정을 넓혔다.

현재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소화하며 라이베리아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코이씨는 “2년짜리 기술교육전문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라며 “현재 라이베리아에는 아이들과 여성에 대한 교육수준이 낮다는 문제가 있지만 ‘교육’의 힘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25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ADRF) 사무실에서 만난 라이베리아의 학교 ‘뉴호프 아카데미’ 이사장 어거스틴 아코이(Augustne s.arkoi)씨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아프리카 아시아 난민교육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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