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법원행정처 가족 여러분!
저는 이제 법원행정처 근무를 마치고 대법관 본연의 재판 업무로 복귀합니다.
지난 2년간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저와 함께 사법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해주신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쑥이 삼밭 가운데에서 자라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아진다는 뜻으로,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입니다.
법원에 몸담고 있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여러 면에서 참으로 훌륭한 분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이룬 것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봉생마중의 삼(麻)처럼 곧고 바르고 우뚝한 여러분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법부가 제 몫의 역할과 책임을 다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사실심 재판의 지향점을 충실심리에 두고 이를 위한 심리여건을 구축하고자, 재판역량의 심판기능 집중 등 다양한 방책을 발굴·시행했습니다.
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정원을 늘리고, 인사운영 방식과 연수 체계를 재편하는 한편 법원의 전문성과 사법행정의 개방성·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또한 구성원의 복지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따스하고 안정적인 직장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도 갖가지 아이디어를 모아 실행했습니다.
이 모두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 그리고 자신감을 북돋우고자 하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서 얻은 크고 작은 성과에 안주하거나 연연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또한 작은 시련이나 난관에 좌절하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단기간에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국민의 존중을 받는 법원이라는 마지막 목표를 향해 긴 호흡으로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영리하지 못한 사람은 입으로 말하고, 영리한 사람은 머리로 말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말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법리와 논리만을 앞세운 재판과 민원 처리를 넘어서, 당사자와 민원인, 나아가 국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주어진 소명을 성심껏 다할 때 우리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 위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법원행정처 역시 사법부 본연의 임무인 재판업무 지원을 위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하 동료 법원가족들을 위하고 섬길 때, 그리고 메마른 지시나 서류만이 아니라 법원과 법원가족을 위하는 따뜻한 진심이 전해지는 그런 사법행정이 이루어질 때, 내부 구성원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어 사법행정의 중추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원행정처 가족 여러분!
법원행정처의 힘은 여러분 서로 간에 믿고 단합할 때 제대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제가 취임사에서 협동과 인화, 창의성 및 현장중시와 적시성을 강조하면서도 협동과 인화를 제일 앞에 둔 것 역시 법원행정처의 내부 소통과 지혜를 모으는 응집력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혜와 덕망을 겸비하신 신임 처장님과 더불어 더욱 단합된 모습으로 사법부를 위한 발걸음을 계속 내딛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의 역량과 책임감을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법원행정처장의 소임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유안진 시인은 ‘말하지 않은 말’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말하고 나면 그만
속이 텅 비어버릴까 봐
..................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 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거다.
참고 참아서 씨앗으로 영글어
저 돌의 심장 부도 속에 고이 모셔져서
뜨거운 말씀의 사리가 되어라고
비록 시인은 그렇게 읊었습니다만, 저는 여러분에게 다시 그 말을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기어이 그 말을 하고 떠나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박병대 제21대 법원행정처장. <사진제공=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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