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아버지'·'장애인 권익 선구자'…진짜 한국인 됐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6-02-05 12: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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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천노엘 신부, 국적증서 받고 진짜 한국인 돼

60년 장애인권 수호 천노엘 신부 "투표 꼭 할 것"

임실치즈 아버지 지정환 신부 "지역경제 발전 지켜볼 것"

(서울=포커스뉴스)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두 사람이 진짜 한국인이 됐다.

법무부(장관 김현웅)는 4일 오후 3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벨기에 국적의 세스테베느 디디에 신부(85·한국이름 지정환)와 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84·한국이름 천노엘)에게 한국국적 증서를 수여했다.

반세기 이상 한국 농촌의 생활수준 향상과 장애인의 자활·권익보호에 헌신해 대한민국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현장에는 천 신부만 참석해 직접 국적 증서를 받았다.


“이제 진짜 한국사람이 됐네요. 선거도 할 수 있게 됐어요. 투표는 꼭 할겁니다.”

올해 84살인 천노엘 신부는 국적 증서를 받아들고 활짝 웃어보였다.

지적장애인과 봉사자가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가족형 거주시설 ‘그룹홈’을 운영하며 자활을 도운 그에게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평생의 소원이었다.

천 신부는 1956년 아일랜드 성콜롬반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57년 선교·구호활동을 위해 국내에 입국했다.

1981년에는 장애인들이 일반인과 같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지역사회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그룹홈을 운영했다.

천 신부는 1987년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사회적응 능력 증진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선교회, 독일 후원단체 등 지원을 받아 ‘엠마우스복지관’을 설립하고 관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1993년에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자활의지 고취를 위해 직업훈련과 사회 적응훈련은 물론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이사로 장애인의 권익옹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60년이란 세월동안 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과 소명의식으로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장애인 권익옹호의 선구자가 천 신부다.

사실 천 신부는 그동안 각종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그에게 상을 주겠다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천 신부는 “상을 받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를 모두 거절했다.

오직 자신이 소속된 단체 명의로 주어진 2011년 보건복지부 장관상, 2014년 청암봉사상, 2015년 만해실천 대상 등만 수상했을 뿐이다.

그랬던 그가 국적 증서를 받아들고는 아이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 신부는 “특별공로자로 귀화 허가를 받은 것에 대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인으로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봉사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천 신부는 그동안 한번도 해본 적 없는 투표권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기뻐했다.

천 신부는 “이제 국적을 얻었으니 반드시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해 힘쓰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천 신부와 함께 국적 증서를 받은 ‘한국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는 이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병으로 인해 거동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1958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이듬해 국내에 입국한 지 신부는 첫 부임지인 전북 부안에서 3년여간 간척사업을 통해 30만평의 농지를 개간했다.

또 이를 지역농민 100가구에 분배해 자립기반 마련을 지원하기도 했다.

1964년에는 전북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해 가난과 굶주림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지역 청년들과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했다.

3년간 실패를 거듭한 지 신부는 직접 유럽 현지 기술자에게 치즈 생산기술을 배워와 1967년 국내 최초로 임실에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치즈 생산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또다시 2년이란 실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한국 최초로 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치즈는 서울 특급호텔로 유통망을 넓혀갔다.


1972년에는 명동 유네스코회관에 들어선 국내 최초 피자가게에 모차렐라치즈를 공급하기도 했다.

임실치즈는 현재 지역사회에서 10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내고 있다.

전국적으로 임실치즈피자 프랜차이즈 업체만 20여개에 달하고 임실치즈를 사용하는 브랜드는 70여개에 이른다.

이처럼 경제활성화에 기여한 지 신부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 저항운동에 앞장섰다가 강제추방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지 신부가 임실치즈를 만든 신부라는 보고를 받은 뒤 추방명령을 거뒀다고 알려지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혼자 총탄이 쏟아지는 광주로 향하기도 했다.

임실치즈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지 신부는 쉬지 않고 일한 탓에 1970년대 초반 다발성신경화증(오른쪽 다리의 신체기능이 조금씩 마비되는 병)을 앓게 됐다.

이때부터 지 신부는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병 치료를 위해 1981년 프랑스 나환자마을로 향한 지 신부는 3년 후 귀국해 중증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 ‘무지개의 집’을 설립했다.

2002년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해 받은 상금 1억원과 사재를 털어 2007년에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매년 장애인 학생 수십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지 신부는 현재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별아래’라는 집에서 장애인 봉사자와 함께 살고 있다.

비록 이날 지병으로 현장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지 신부도 역시 한국국적 취득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지 신부는 “한국국적 취득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며 “지금은 지병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지만 임실치즈의 발전을 통해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생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법무부는 2012년부터 국적법에 따라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특별귀화를 허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기존 외국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규정을 통해 한국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은 인요한(57)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브라스마리 헬렌 전진상의원 원장, 엄넬리 한민족학교 교장 등 7명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지역경제 발전과 장애인을 위한 헌신적 활동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사랑과 나눔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돼 더욱 따뜻한 사회가 되도록 많은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익에 기여한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을 적극 발굴해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할 것”이라며 “국가에 헌신한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힘을 보탤 방침”이라고 밝혔다.법무부는 4일 오후 3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벨기에 국적의 세스테벤스 디디에 신부와 아일랜드 국적의 오네일 패트릭 노엘 신부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현장에는 천노엘 신부만 참여했다. 가운데 김현웅 법무부 장관, 바로 오른쪽이 천 신부. <사진제공=법무부>김현웅 법무부 장관(왼쪽)이 한국국적을 취득한 천노엘 신부에게 국적증서와 태극기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부>천노엘 신부(오른쪽)가 김현웅 법무부 장관 앞에서 국적증서를 읽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부>'한국 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의 최근 모습. 지 신부는 지병으로 이날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진제공=법무부>1967년 국내 최초로 전북 임실에 치즈공장을 설립한 지정환 신부가 당시 체더치즈를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법무부>지정환 신부는 다발성신경화증으로 프랑스 나환자마을에서 3년간 요양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장애인 자활에 헌신했다. <사진제공=법무부>지난 2007년 지정환 신부는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해 장애인 학생 수십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지난 2007년 3월 무지개장학재단 장학금 전달식 모습이다. <사진제공=법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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