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까지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서 푸드트럭 '청년상회' 운영
(서울=포커스뉴스) 박영호(26)씨는 지난 2001년 8살 터울 형의 등만 믿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국경을 넘었다.
중국과 태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정착한 지 올해로 14년째. 한국에선 그를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이라 부른다.
모든 것이 신기했던 12살 어린 소년에서 세상 물정을 배워가는 26살의 어엿한 청년이 된 그가 이제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단추를 뀄다.
한국마사회의 렛츠런파크에서 자신의 푸드트럭, ‘청년상회’를 운영하면서다.
한국의 어느 청년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열정이 담긴 샌드위치는 어떨까. 주인공 박영호씨를 만났다.
-한국엔 언제, 어떻게 오게 됐는지
▲지난 2001년 북한을 나와 중국과 태국을 거쳐 2002년 한국에 도착했다. 1990년대에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북한에 식량난이 극심했다. 어머니가 다른 지역에 식량을 구한다고 떠났고 형이 그런 어머니를 찾으러 떠났을 때 영양실조 3단계에 이르렀다. 동네 사람들도 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 형이 극적으로 돌아왔고 북한을 떠나지 않겠다는 아버지에게 “그럼 중국에 가서 (영호를) 살 좀 찌우고 돌아오겠다”며 나를 데리고 탈북했다. 난 중국으로 가는 줄만 알았고 한국으로 온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은 어땠는지
▲브로커들을 통해 왔다. 처음에는 6~8명 정도가 함께 출발했는데 중간에 브로커들이 바뀌면서 모두 헤어졌다. 너무 어려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형이 시키는 대로 잘 쫓아갔다. 북한에서도 죽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무섭다거나 그런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해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가
▲우선 북한에 있을 때는 한글을 아예 못 읽는 까막눈이였다. 동급생들보다 3살 많은 나이에 초등학교 4학년으로 입학했고 그 때 친구들을 통해 한글을 배우게 됐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는 부모님이 그리워서 힘들었다. 아버지가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당시 안산에는 새터민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없어서 일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마음을 달랬다.
-부모님과 연락은 되는가
▲어머니는 행방불명됐다. 아버지에게는 브로커를 통해 돈을 계속 보내드렸는데 지난 2012년 6월에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지 수 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돼 힘들었다. 부모님 사진도 없어서 이젠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가물가물하다.
-부모님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
▲형이 사회복지사를 하고 있고 정말 올곧게 성장했는데 부모님이 예의나 사람된 도리 같은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언젠가 쌀독에 쌀이 한줌밖에 없었는데 부모님은 우리 집에 들어온 도둑에게 밥을 해주고 보냈었다. 당시 그 상황이 서글퍼 울던 내게 부모님은 “저 친구는 혼자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빨리 죽는다. 우리는 그래도 네식구가 서로 의지하면서 물이라도 먹으면서 살고 있지 않냐”고 달랬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부모님이 이해는 잘 안 된다(웃음).
-한국에 와서 사람들의 편견 등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면
▲북한에서는 잘 먹어도 보리랑 옥수수뿐이었다. 북한말 중에 ‘이팝(흰밥)에 괴깃국 배터지게 먹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말로 흰밥에 고깃국을 원없이 먹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북한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도와줬던 어른들 중에 ‘밥을 왜 남기냐? 북한에서 잘 못 먹었을 텐데 아주 배가 불렀다’는 식으로 말을 해 상처를 받은 적도 있다.
-이제 분위기를 바꿔보자. 청년상회는 어떻게 생각하게 됐는가
▲지난 2012년 여름 독일에서 서독과 동독의 통일과정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1주일간 다녀왔다. 그 때 여행을 하면서 길거리에 있는 푸드트럭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먹고 건전하게 술을 마시는 분위기에 반했다.
다들 창업이라고 하면 거창한 걸 생각하는데 구멍가게 하나를 내도 내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의 푸드트럭에 대한 규제들을 공부하며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 정부도 관련 규제를 푼다고 해서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
-(푸드트럭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퇴짜를 많이 맞았다. 수 많은 공기업, 대학 캠퍼스 등에 사업계획서를 넣어 ‘이러한 청년창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잘 안됐다. 현재 서강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데 우리 학교를 비롯해 몇몇 대학교에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규제가 많았다.
그러다가 마사회는 들어가는 입구까지가 다 주차장이어서 푸드트럭이 들어서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계속 문을 두드렸고 사업계획서를 내고 3번의 면접을 거쳐 계약을 맺었다.
-준비과정에서 주변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
▲대학교 3학년 때 사단법인 창조와 혁신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멘토 분들이 푸드트럭과 관련해 경영컨설팅을 해줬고 마사회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많이 도와줬다. 개업한 이후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실무자 분들이 문제점 해결을 지속적으로 도와주고 있어 정말 감사하다.
-개업한 지 2~3주 정도 됐는데 장사는 잘 되는가
▲토스트와 커피를 팔고 있는데 최근 한파 때문에 매출이 뚝 떨어졌다. 예상 월 매출액은 한파만 아니면 80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 월급 주고 자릿세 내고 세금, 재료비 등 다 빼면 남는 건 많을 거 같지 않다(웃음). 주된 고객층은 40대 이상 아주머니, 아저씨들인데 이들에게 열심히 팔아야 할 것 같다.
-계약기간이 2018년까지라고 하는데 그 이후 계획은
▲2년 계약인데 계약 갱신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다른 아이템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2년 뒤에 지금과 비슷한 조건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수익을 열심히 모아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할 생각이다.
-창업과 관련된 더 큰 목표가 있는지. 인생의 목표는
▲개발도상국에 진출하고 싶다. 선진국은 대기업들이 이미 다 진출해 있어서 개인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아이템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인생 최대의 목표는 행복하고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일정한 수익으로 얻은 안정된 생활을 아이들과 부인과 함께 누리고 싶다. 좋은 아빠, 남편이 되고 싶은 게 최종 목표다.새터민 푸드트럭 '청년상회' 운영자 박영호씨가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에서 샌드위치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제공=박영호>새터민 푸드트럭 '청년상회' 운영자 박영호(왼쪽)씨와 직원인 박씨의 친구가 카메라를 향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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