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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포커스뉴스) “1997년 4월 3일 화목하고 행복했던 우리 가족은 절망 속으로 빠져갔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합니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한숨 섞인 절규는 순간 재판정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당시 사건 담당검사는 아니었지만 수사 초기 제대로 된 기소를 하지 못해 19년간 가족들의 애를 태운 검찰도, 살인을 했든 하지 않았든 당시 현장에서 조씨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존 패터슨(37)을 변호하는 변호인도, 같은 재판부는 아니지만 리를 무죄로 풀어주고 패터슨 송환 이후 판결까지 19년을 기다리게 한 재판부도 모두 작은 체구에 힘겨운 걸음과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 심리로 진행된 아더 존 패터슨(37)의 11차 공판에 고(故) 조중필(24)씨 어머니 이복수씨가 피해자 진술을 위해 나섰다.
이씨는 그동안 패터슨 재판에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아들의 마지막 순간이 수없이 이야기되는 현장이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범인을 봐야 한다”며 괴로움을 이겨냈다.
이날 역시 재판부는 “피고인 앞에서 진술하는 것이 괜찮겠나”라며 이씨 의중을 물었다.
그러나 그는 “해야 한다. 자식을 위해 뭐를 못하겠나”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글을 읽어내려갔다.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3대가 모여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1997년 4월 3일, 행복이 끝났습니다. 우리 중필이가 나쁜 아이들 칼에 잔인하게 찔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희망도 없고 절망 속으로 빠져갔습니다.”
한문단쯤 읽었을 무렵 그의 목소리가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에 요청해 이씨에게 물 한잔을 건넸다.
물 한모금을 넘긴 그는 다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중필이가 교통사고나 몸이 아파 죽었어도 가슴이 찢어졌을 텐데 나이도 어린 놈들에게 잔인하게 9군데나 칼에 찔려 죽었으니 우리 중필이가 죽기 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 생각만 하면 내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집니다.”
이씨는 이날 진술에서 패터슨과 애드워드 리(37)의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는 “자식을 낳았으면 똑바로 키웠어야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키웠어야지 어떻게 키웠길래 살인자가 되게 키우나”라며 “그들은 우리 중필이만 죽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식 죽은 부모는 사는게 사는게 아닙니다. 남의 가정을 이렇게 뽑아 흔들어 놓고 어린 놈들이 얼마나 맹랑하고 나쁜지 둘이 서로 죄를 미루고 있다”며 “나도 마음같아서는 우리 중필이 죽인 것처럼 두 놈을 똑같이 죽이고 싶다”고 눈물을 삼켰다.
이날 이씨는 재판부를 향한 원망도 쏟아냈다.
“한 사람은 1년 4개월만에 8·15특사로 나왔고 한 사람은 1년 6개월만에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우리나라 법이 이런 법입니까. 이런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우리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거 같습니다.”
순간 재판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재판부를 향한 항의가 불쾌해서가 아니라 피해자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인 듯 보였다.
이씨는 “이제 74일만 지나면 만 19년이 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재판을 지켜보는 내 가슴이 얼마나 떨리는지 아십니까. 사지가 떨린다”며 “19년 전 중필이는 꿈도 많고 희망차게 살 날만을 남긴 아이였는데 두 사람이 우리 중필이 인생을 망치고 꺾어놨다”고 말했다.
이날 이씨는 검찰의 수사 초기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재판이라는 것을 처음 겪었고 검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해 그 말만 믿었는데 재판이 잘못되고 말았다”며 “우리는 공범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검사는 칼로 찌른 사람을 밝히겠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수사를 하기 위해 사위는 직장을 그만 뒀고 30군데가 넘게 돌아다녔다”며 “한 변호사가 ‘한명이 무죄라면 다른 한명은 유죄라는 이야기니 빨리 고소하라’고 해 패터슨을 고소하려 했지만 일사부재리를 들어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런데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가니 그제야 고소장을 받아줬다”며 “우리가 고소장을 접수한 것이 1998년 11월 9일인데 패터슨이 1999년 8월 23일 출국했다. 9개월간 우리가 물어보면 소재파악 중이라는 답변만 하던 검사들은 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원망을 드러냈다.
이날 이씨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이후 사건 해결을 위한 효력이 빠르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중필이 사건을 영화화한 ‘이태원 살인사건’이 2009년 개봉했다. 시사회는 못갔다. 아들이 칼에 찔리는 것을 어떻게 보겠나”라며 “이후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때 질의를 했고 이후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등이 사건을 이야기 하니 효력이 빨랐다. 탄원서를 낼 때보다 훨씬 빨랐다”고 씁쓸해 했다.
진술 말미 이씨는 재판부의 엄정한 처벌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당부했다.
“아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왜 우리가 돈을 쓰며 재수사를 해달라고 거리를 쫓아다녀야 합니까. 아들은 억울하게 죽었는데 우리는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합니까. 죽인 범인이라도 잡아 구속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발 범인을 밝히셔서 엄한 벌을 주십시오.”
준비한 글을 모두 읽은 이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청석으로 가기 전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잔혹한 범죄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굽은 허리로 재판부를 향해 숙인 고개는 유가족과 피해자를 향해 누군가 반드시 건네야 할 사죄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이태원 살인사건'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인 지난해 10월 8일 오전 피해자 조중필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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