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패퇴 이래 가장 넓은 땅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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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 |
(서울=포커스뉴스) “이만하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임무를 넘기고 우리는 철수해도 되겠지”라며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이 물러간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갈수록 약진하고 있다.
아프간 치안유지와 재건을 위해 파견되었던 다국적 연합 군대인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임무종료를 선언하고 2014년 12월 전투 병력을 철수한 지 1년 남짓 시간이 흘렀다. ISAF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주도해 2001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쳐 설립되어 14년 간 아프간에서 전투와 민사작전을 수행했다.
ISAF는 철수하면서 이후 탈레반과의 싸움을 주도할 아프간 보안군을 “훈련하고 조언하고 지원할” 잔여병력 1만3000명을 아프간에 남겼다. 이 외국군 가운데 미군이 절반을 넘는다. 미군과 나토군이 임무를 아프간 정부군에 넘기는 나토의 이른바 “전환” 작업은 그간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전문가들은 그 성과가 참담하다며 지난 12개월 간 아프간의 정치여건과 보안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평가한다.
서방군대의 철수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은 탈레반은 지난해 춘계(春季) 공세를 여느 때와는 달리 대폭 연장해 겨울까지 밀어붙였다. 이 무법자들은 2001년 미군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난 이래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넓은 영토를 통제한다. 탈레반의 군사적 약진을 나타내는 최근 사례로는 △지난 12월 21일 바그람 공군기지 근처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을 포함해 외국군 6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 △ 같은 달 8일 탈레반 대원들에 의한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국제공항 공격으로 민간인을 포함해 모두 61명이 숨진 참사 △앞서 9월 북부도시 쿤두즈가 한때 탈레반 수중에 떨어진 것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아프간 정부군이 직면한 최악의 위협은 남부 헬만드주(州)를 탈레반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전투 상황이다. 이곳은 2009년에서 2011년에 걸쳐 미군과 영국군 등이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서 탈환한 요충지다. 그런데 최근 탈레반이 주도(州都) ‘라쉬카르 가’를 향해 남쪽과 북쪽에서 압박해 들어왔다.
헬만드를 구성하는 13개 지구 가운데 핵심 지역인 무사 칼라와 상긴을 포함해 5개 지구가 현재 탈레반의 수중에 있다. 또 다른 다섯 남짓한 지구들을 놓고 양측은 현재 전투중이다. 그 와중에서 지난주 나드 알리 지구의 미군 특전대가 집중포화를 당해 한 명이 전사했다. 탈레반이 헬만드를 차지하려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은 이 지역이 돈이 되는 마약 원료, 즉 양귀비 재배지이기 때문이다. 아프간의 전체 약 400개 지구 가운데 탈레반은 10분의 1을 장악하고 있으며 또 다른 10분의 1을 놓고 교전 중이다.
전투가 격화되면서 병력이 35만2000명인 아프간 군경(軍警)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아프간 군경은 전년보다 28% 많은 1만6000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7000명은 전사자였다. 민간인도 6만5000명가량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탈레반 사상자도 물론 크게 늘었다. 현재 탈레반 병력은 4만~6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전투 격화의 배경으로 △아프간 정부의 기능장애 △평화과정 출범 무산으로 이어진 외교노력의 실패 △탈레반 내분 △미국의 아프간 장기 전략 부재를 꼽을 수 있다.
15개월 전 등장한 아프간 신정부는 변덕스러웠던 전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가 이끌었던 이전 정부보다 여러 면에서 나은 모습을 보였다. 아쉬라프 가니 대통령과 총리 격인 압둘라 압둘라는 안보와 관련해 서방의 지원을 환영한다. 이들은 내정에서는 부패 억제를 위해 유용한 조처들을 취했다. 하지만 정부 요직을 서로 차지하려고 가니 지지자들과 여러 부족 집단들이 한데 엉겨 싸우다 보니 중앙 부처들이 지도자 없이 표류하고 지사 없는 주(州)가 속출하는 혼란상이 연출되었다. 특히 중요한 국방장관직은 아직도 공석이다.
가니 대통령이 아프간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파키스탄을 끌어들이려는 것을 놓고 정부 내에서 분열이 생기고 있다. 많은 아프간인들은 오랫동안 이웃나라 파키스탄을 혼란을 조장하는 세력으로 경원시해 왔다. 파키스탄은 예나 지금이나 버젓하게 탈레반 지도자들을 초대한다. 가니 대통령은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협상 테이블로 떠밀어 주기를 원한다. 그렇게 해서 평화와 경제 재건으로 가는 길을 닦고 싶어 한다. 그런 노선을 추구하는 가니 대통령은 지난달 초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자 이에 반발해 아프간 안보국의 수장이 덜컥 사임해 버렸다. 그 이후 파키스탄을 향한 가니 대통령의 유화책에 맞서 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서 전직 군벌 압둘 라술 사이야프가 이끄는 새로운 “보호와 안정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탈레반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파키스탄의 나와즈 샤리프 총리와 실력자인 군사령관 라힐 샤리프 장군은 탈레반을 달래 호전성을 완화시키고 협상에 더 성의를 보이도록 촉구하겠다고 아프간 정부에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조짐은 거의 없다. 이처럼 상황진전이 지지부진한 데에는 △파키스탄 정보국 수장들이 여전히 약하고 혼란스러운 아프간을 원한다는 것 △탈레반의 분파인 ‘테릭 에 테릭 파키스탄’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파키스탄이 탈레반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이전만 못하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아프간의 탈레반 내부에서도 권력투쟁이 한창이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협상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아프간·파키스탄·중국·미국 4개국 고위 관리들이 지난 11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회동한다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아프간의 탈레반 조직은 내부 파벌 다툼에 휩싸여 있는 까닭에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해 7월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가 2년 전 파키스탄 카라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물라 오마르에 이은 탈레반 2인자이자 사실상 후계자인 물라 아크타르 만수르에게 즉각 도전을 안겼다. 물라 오마르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믿었던 동안 물라 아크타르 만수르는 내부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양귀비 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라 오마르의 사망을 은폐하는 데 그가 일정한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 △그가 파키스탄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 △오마르 사망 소식이 터져 나오기 전 그가 아프간 정부와 대화를 터는 데 적극적이었다는 점 등으로 그의 정통성은 온통 상처를 입었다.
그러자 그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출현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프간 일부 지역에서는 이슬람국가(IS)가 탈레반 전사들을 영입해 현지에 정착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상황이 이처럼 우습게 돌아가자 물라 만수르는 △아프간 정부에 결코 유화적인 태도로 나가지 않겠다 △파키스탄 군사 정보국의 놀음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전투를 한층 가열차게 몰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탈레반은 평화회담에 임할 생각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테러 문제 전문가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ISAF 철수를 가리켜 “세계최상의 군인 10만 명”이 아프간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그들이 원하는 돌파구를 아직 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최근 헬만드에서 얻은 승리는 소규모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그들이 지배하는 아프간 인구는 이전보다 고작 5% 더 많을 뿐이다. 탈레반은 이렇다 할 도시들을 거의 위협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프간 정부군은 대규모 손실에도 불구하고 기존 거점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오핸런 연구원은 아프간의 이런 상황을 가리켜 “반군이 약간 우세한 교착상태”라고 규정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5500명 규모의 미군 병력을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17년 초까지 아프간에 주둔시키겠다며 이전의 완전 철군 계획을 번복했다. 이보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말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대부분 철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바마가 밝힌 아프간 주둔 병력 5500명도 지금 돌아가는 아프간 상황을 보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가 올해 더 힘겨워질 탈레반과의 싸움을 효과적으로 전개하도록 도울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오바마는 이라크 정부군이 IS 격퇴전 과정에서 미국에게서 얻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공군력 지원을 아프간 군대에 제공해야 한다고 오핸런 연구원은 권고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함께 아프간 군대와 협력할 미군 교관 3000명을 아프간 현지로 추가 파견함으로써 아프간 군경 훈련 계획을 확대해야 할 것으로 권고 받고 있다. 헬만드주에서 정부군이 고전중인 데에는 교관이 너무 적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가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은 이와 함께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바로잡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도 시급히 마련해 내놓아야 한다. 14년 전쟁 기간 동안 1조 달러(약 1200조원)를 전비로 쏟아 부은 미국은 종전 선언 이후에도 아프간 정부군 훈련과 무기·물자 지원에 매년 100억 달러(약 12조원) 가량을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공급한 무기가 탈레반에 흘러들어가거나 아프간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기 일쑤다. AP통신은 11일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의 공세보다 ‘유령병사(ghost soldier)’로 인해 더 고통 받고 있다고 현지 실정을 보도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병사들이 무려 40%에 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령병사 상당수는 탈레반이나 무장군벌들과 연계돼 있어 정부군 전력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자국 군인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하겠다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은 결국 ‘원격 전투’의 한계로 이어지고 있는셈이다.(Pool Photo/Getty Images)2016.01.13 ⓒ게티이미지/멀티비츠 (서울=포커스뉴스) 미군 등 다국적군이 1년 전 전투종료를 선언하고 떠난 아프간에서 공세의 고삐를 쥔 탈레반이 정부군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갈수록 넓은 지역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2016.01.13 이인규 인턴기자 (Scott Olson/Getty Images)2016.01.13 ⓒ게티이미지/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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