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검장 "공중으로 날아간 세금, 누가 책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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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사 하는 이영렬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
(서울=포커스뉴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공중으로 날아간 세금은 누가 책임집니까”
한껏 날이 선 이 말은 억울한 사연의 피해자가 남긴 것이 아니다.
검찰 2인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겨냥해 뱉은 날선 비판이다.
앞서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김동아)는 ‘하베스트 날림 인수’로 석유공사에 수조원대 손실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사흘만인 11일 이 지검장이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부임 한달도 되지 않은 이 지검장의 서울고검 기자실 방문에 기자들도 역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통상적으로 새로 부임한 검사장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기자실을 찾는 경우는 있지만 판결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일은 선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 지검장이 자청해 열린 것이다. 전격적으로 결정된 기자회견 탓에 기자들에게 알려진 시간도 회견 시작 30분 전이었다.
이 지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 전 사장은 나랏돈 5500억원의 손실을 입혔고 1조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손실이 났다”며 “국민이 낸 세금이니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 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과정에서 이같은 손실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됐는데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공중으로 날아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재판부를 정면으로 겨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경영평가 점수 잘 받으려고 나랏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사후에는 '경영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면 회사 경영을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인가”라며 “아무런 실사 없이 3일 만에 '묻지마식' 계약을 하고 이사회에 허위 보고하여 1조원이 넘는 손해를 입혔는데 이 이상으로 무엇이 더 있어야 배임이 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판결처럼 경영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며 그나마 유일하게 존재하는 검찰수사를 통한 사후통제를 질식시키는 결과가 된다”며 “검찰은 단호하게 항소해 판결의 부당성을 다툴 것”이라고 말해 재판부와 전면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동안 검찰이 기소를 제기한 후 심리를 거쳐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은 적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지검장이 직접 나서 항소의 뜻을 밝히는 경우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무죄 판결이 나면 공보를 맡고 있는 차장검사 혹은 부장검사가 비공식적인 간담회를 통해 기자들에게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짧은 입장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례적인 이 지검장의 행보에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법원을 향해 쌓인 불만을 터트린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부패 척결을 기조로 삼아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왔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취임사부터 최근 발표한 신년사 등에서 줄곧 부패 척결을 강조해왔다.
이같은 검찰 방침에 따라 최근 이뤄진 검찰 인사에서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신설됐고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에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을 직제화해 ‘방위사업수사부’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패와의 전쟁, 비리와의 전쟁 등을 선포한 검찰 입장에서는 2016년 첫 자원개발 비리 사건 판결이 무죄에 그친 것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이 비리 수사를 진행하며 제대로된 기소를 하지 못했다거나 무죄 판결, 가벼운 형 선고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며 “이번 강영원 사장 건으로 그간 눌러왔던 불만이 터져나온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단 이번 사건뿐 아니라 외부 이목이 집중된 사건 중 재판정에서 검찰 기소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단이 나온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검찰이 이같은 법원의 움직임에 경고를 한 것 아니겠느냐”는 견해를 밝혔다.
법원은 검찰의 공개 비판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법원 내부적으로는 이 지검장의 기자회견을 두고 불쾌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원 관계자는 “검찰은 판결에 불복할시 항소를 해서 다시 사안을 다툴 수 있다”면서 “굳이 법적인 창구를 두고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법조계 관계자도 역시 “이번 사안에 대해서만 검찰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자신들이 올 한해 가져가야 할 비리 사건이 즐비해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같은 사건들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강한 어조로 법원을 비판한 것 같은데 법정 안에서 일어난 일은 법정 안에서 해결해야지 언론을 통해 해결하는 건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김동아)는 강 전 사장 배임 사건에 대해 “하베스트 인수과정에서 피고인이 배임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 전 사장이 배임의 동기를 가졌거나 이로 인해 하베스트가 장래 손실을 입을 것이라 예상할 정도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을 거래과정에서 용인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대부분 혐의가 기초 사실이 인정되지 않거나 인정된다고 하더라고 석유공사 조직이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시했다.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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