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자살전투기 조종사 "종전 70년에 남은 건 오직 전쟁혐오"
"격추한 적군기 눈에 아른…참혹한 전쟁 재발 막는 게 마지막 소명"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자살 전투기를 조종한 하라다 가나메(原田要·99) 씨가 종전 70년을 앞두고 전쟁에 대한 회한을 다시 털어놓았다.
하라다 씨는 12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70년이 지나고 모든 게 사라졌지만 전쟁에 대한 증오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태평양 전쟁 때 일본 해군이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운용한 자살특공대의 전투기 '제로센'을 몰고 적군의 항공기 19대를 격추한 에이스였다.
하라다 씨는 "내가 적기를 추격할 때면 상대는 바로 위축됐다"며 "제로센의 탄환을 맞은 적기는 공중에서 분해됐고 내 마음에는 안도와 우월감이 넘실거리곤 했다"고 과거 전투를 회상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때 전세가 불리해지자 폭탄을 잔뜩 실은 전투기가 연합군 함대에 고의로 충돌해 함께 사멸하도록 하는 '가미카제(神風) 작전'을 구사했다.
제로센을 모는 하라다 씨도 그 자폭 특공대 작전에 동원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
하라다 씨는 "그렇게 영예로운 지위(자폭조)에 선발되는 이들은 운이 아주 좋은 것으로 여겨졌다"며 "죄책감은 아예 없고 조국을 위한 마지막 봉사라는 생각들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 하라다 씨를 포함해 당시 영웅으로 떠오른 다수는 후회를 감출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하라다 씨는 "전쟁이 끝나자 내가 악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전투 중에 좌절감에 빠져 제발 살려달라고 손짓을 하는 적군 조종사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전투기 창문을 통해 바라본 적군 조종사들의 표정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쓰린 기억을 되살렸다.
하라다 씨는 "내 손에 죽은 사람들은 가족과 자녀가 있고 죽고 싶지도 않은 이들이었다"며 "그 사람들을 죽였다는 게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과거"라고 설명했다.
현재 하라다 씨는 일본 나가노에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외출을 삼가고 있다.
삶의 끝을 바라보는 하라다 씨의 마지막 소명은 일본의 전쟁 재발을 막는 것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하라다 씨는 지난 4월 나가노에서 열린 강연에서 "전쟁만큼 참혹한 것은 없다"며 "젊은 세대가 내가 겪은 참혹함을 다시 겪지 않게 하려고 경험담을 전하고 싶다"고 역설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권은 안보법제를 개정해 자국 군대를 해외에 파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태평양 전쟁 후 일본의 전쟁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제정된 평화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하라다 씨는 평화헌법 위반 논란에 대해 의견이 확고했다.
그는 "미지근하게 얘기하지 않겠다"며 "나는 전쟁이 싫고 전쟁보다 추악한 것은 없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라다 씨는 전쟁의 참상을 다시 강조하며 CNN 인터뷰를 마쳤다.
"작전을 마치고 항공모함에 돌아왔을 때 팔다리가 없는 중상자들이 잔뜩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아파요. 물 좀 주세요. 엄마' 이런 비명을 들었어요. 나는5시간 비행으로 감각이 무뎌졌을 뿐 다친 데가 없었지만 의료진은 오히려 나를 돌봤어요. 최전방에서 중상자는 우선순위에서 꼴찌라고 하면서요. 전쟁에선 인권이라는 게 없는 겁니다. 모두가 무기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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