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70년 일본> 국제기여 늘렸지만 이웃과의 화해 '먼길'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8-12 09: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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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맹 탈퇴 '문제아'에서 유엔 분담금 2위 '우등생'으로
한국·중국과 역사 갈등 여전…아베 정권 역사인식 퇴행 논란
△ 윤병세 외교부 장관(왼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세계무역센터(PWTC)에서 약식 회담을 마친 후 회의장을 나서는 모습.

<전후70년 일본> 국제기여 늘렸지만 이웃과의 화해 '먼길'

국제연맹 탈퇴 '문제아'에서 유엔 분담금 2위 '우등생'으로

한국·중국과 역사 갈등 여전…아베 정권 역사인식 퇴행 논란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패전 후 잿더미 속에서 새출발한 일본은 지난 70년간 경제력을 발판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늘려갔다. 하지만 자신들의 무모한 전쟁 과정에서 막대한 희생을 겪은 한국, 중국 등 이웃국가와의 '화해 공정'은 심화하는 과거사 갈등 속에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 국제연맹 탈퇴한 '침략 국가'에서 유엔 분담금 2위 국가로

일본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 줬지만 유엔 분담금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2위다.

올해 일본의 유엔 분담금은 2억 9천 400만 달러(약 3천 469억 원)로 전체의 10.8%를 담당하고 있다.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에서 탈퇴(1933년)하며 '군국주의 폭주'를 했던 일본이었음을 감안할 때 극적인 변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각종 국제회의 계기에 개발도상국에 제공키로 약속하는 공적개발원조(ODA) 등은 보통 한국이 쓰는 금액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지난 7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이 이제껏 유무상으로 제공한 공적개발원조(ODA)는 약 37조 6천 억 엔(약 355조 원)에 달했다.

패전 이후 동서 냉전 속에 자유 민주주의 진영에 편입된 일본은 이 같은 '엔화 파워'를 활용,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피해를 준 한국, 중국, 동남아 각국과의 개별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한국전쟁 특수를 누린 일본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매년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등 동남아의 전쟁 피해국들에 각각 수백억 엔∼수천억 엔을 배상하는데 합의했다.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동남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한다는 내용을 담은 1977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당시 총리의 '후쿠다 독트린'은 동남아 각국과의 화해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이 선언은 일본이 지원과 경협을 미끼로 동남아를 '경제 식민지화'하려 한다는 의심을 어느정도 해소하는데도 기여했다.

한국과는 1965년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청구권 자금 5억 달러(무상 3억·유상 2억 달러)를 제공했고 1980년대 한국에 대한 40억 달러 규모의 경협을 진행했다. 1972년 국교를 정상화한 중국에는 3조 엔 이상의 엔 차관을 제공, 개혁·개방의 종자돈을 댔다.

해외 무력행사가 헌법상 불가능한 한계 속에서도 1990년대 이후 자위대를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에 적극 참가시키기도 했다.







◇한·중과의 화해는 '아직'…'우익' 아베 정권서 역사인식 '퇴행'

하지만 한국, 중국 등 이웃국가와의 진정한 화해는 아직 '먼 길'이다. 바로 이 대목이 같은 2차대전 패전국으로서 프랑스, 폴란드 등 이웃국가들과 화해한 뒤 유럽연합(EU)의 '지도국' 역할을 하는 독일과 자주 대비된다.

화해를 가로막는 최대 난제는 결국 피해와 가해의 '역사' 문제다.

한일관계의 경우 군사정권 시절 이뤄진 국교정상화(1965년) 이후 오랜시간 숨죽이고 있었던 군위안부, 강제징용 등의 피해자들이 민주화를 계기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역사 갈등이 본격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남은 과거사의 과제를 적극 해결하려 하지 않고 '청구권 협정으로 종결된 사안'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법적으로 일단락된 사안을 한국이 다시 제기하고 있다는 이른바 '골대 이동론'이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이런 태도는 현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과 결부되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일례로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현 일본 정부의 대응은 2012년 12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꾸준히 퇴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군위안부 문제를 '강제연행' 여부로 축소하려 애써온 아베 내각은 작년 8월 아사히 신문이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의 일제시기 한국 여성 강제연행 증언에 기반한 기사들을 취소한 이후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확산시키는데 외교력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또 작년에는 군위안부 제도에 일본군과 관(官)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고노담화)를 검증하기도 했다.

'국가 지도부'의 퇴행적 역사인식 속에 교육 현장에도 심상치 않은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식민지배와 침략을 미화하는 '우익사관'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이쿠호샤(育鵬社)가 편찬한 중학 역사 교과서는 올해 문부과학성(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뒤 최근 일본 제2,3의 도시인 요코하마(橫浜) 시와 오사카(大阪) 시의 시립학교에서 채택됐다. 철저한 자국 중심의 사관을 담은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확산되는 상황은 '화해의 길'에서 일본이 더 멀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베 정권은 '중국 위협론'을 강조하며 집단 자위권 법제화를 추진하고 매년 방위예산을 증액하는 등 아시아 각국과의 화해에 기여한 '평화헌법' 체제에서 점점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한국 전문가는 화해를 위한 쌍방의 노력을 주문했다.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니가타(新潟)현립대학 대학원 국제지역학연구과 교수는 "한일의 경우 수평적 관계로 변했는데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고, 한국은 일본에 대해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변화된 상황에 맞춰 새로운 시각으로 상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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