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질문해라"…ARF 찾은 北 거침없는 공세적 여론전(종합)
회견 2시간전 공지…영어로 진행, 질의응답까지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 현장에서 북한이 6일 연 공개 기자회견은 그동안의 행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북측이 그동안 각종 계기에 기자회견을 한 것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날 회견은 형식이나 진행방식 등에서 종전과는 상당히 달랐다.
북측은 우선 기존 돌발성 또는 즉흥적 회견에서 탈피해 이날은 회견 2시간여를 앞두고 아세안(ASEAN) 관련 회의를 주관하는 사무국을 통해 일정을 미리 공지하고, 이를 알리는 보도자료까지 뿌렸다.
북측은 지난해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ARF 외교장관회의 때도 기자회견을 했지만, 회의시설의 협소한 계단에서 갑자기 진행해 이를 놓친 취재진도 없지 않았다.
북측은 또 회견 장소도 아세안 관련 회의가 열린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세계무역센터(PWTC)의 미디어센터 내 기자회견장을 택했다.
기존에는 북한 대사관이나 숙소로 묵은 호텔 로비, 회의장 한쪽을 이용했지만 이날은 아세안 관련 회의 취재를 위해 마련한 미디어센터내 공식 기자회견장을 이용한 것이다.
이는 기자회견 대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북측의 기자회견에는 주로 한국이나 일본 취재진이 다수였으나 미디어센터내 공식기자회견장을 이용함으로써 아세안 및 ARF 주요국 취재진을 모두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이날은 이례적으로 한글이 아닌 영어로 회견을 진행했다.
유엔에서 근무했던 북한 리동일 전 유엔대표부 차석대사의 기자회견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리수용 외무상 대변인으로 소개하며 리 외무상이 ARF 외교장관회의에서 한 연설문을 주요 내용을 자신의 어법으로 소개하는 한편, 취재진으로부터 일문일답까지 받았다.
기자회견과 일문일답에는 30분이나 진행됐다.
리 전 차석대사는 기자회견장에 설치된 회견대가 취재진의 마이크로 꽉 채워져 회견문을 놓을 자리가 없자 미디어센터측에 "공간이 없다. 마이크를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디어센터측은 별도의 작은 테이블을 추가로 설치해주기도 했다.
리 전 차석대사는 일문일답 과정에서 한국어 질문이 나오자 "여기는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있는 만큼 영어로 질문을 해달라"고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북측의 이날 기자회견은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핵 문제를 고리로 북한에 대한 압박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적극적 반발로 보인다.
특히 이날 ARF 외교장관회의 결과물인 의장성명에 북핵 문제가 반영될 예정인 가운데 의장성명 채택을 앞두고 아세안 국가들을 포함해 27개국으로 구성된 ARF 회원국들을 상대로 한 적극적 여론전을 벌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등이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라면서 모든 책임을 미국의 적대시 정책 탓으로 돌리는 행태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한미일을 중심으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북측이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며 한미일과 중국간 대북공조에 틈을 벌리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측의 이 같은 공세적 행보가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한이 수세에 몰린 상황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북측은 이날 리 외무상의 ARF 외교장관회의 연설문과 리 전 차석대사의 질의응답을 통해 북핵 등 한반도 정세의 악화 책임을 미국으로 돌리며 "미국이 잠에서 깨어나야 하고, 미국이 대담한 정책 변화를 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추가 핵실험과 오는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 계기 국제사회에서 우려하는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공위성은 주권사항"이라면서 강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대해 "전 세계가 역동적인 리더십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민생과 산업 각 분야 발전상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북한 대표단이 기자회견 현장에서 문서로 배포한 리 외무상의 연설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이름은 다른 글자보다 굵은 글씨체로 표시돼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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