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없는 책?" 중 작가 실험적 저술 펴낸 헤이북스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8-05 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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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자극이 되는 책 내고파" 포부 밝힌 윤미경 대표
△ '지서'의 10~11쪽 내용. 알람 시계를 누르고 침대에서 나와 출근을 준비하는 미스터 블랙의 일상을 보여준다.

"글자 없는 책?" 중 작가 실험적 저술 펴낸 헤이북스

"의외의 자극이 되는 책 내고파" 포부 밝힌 윤미경 대표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이모티콘 등 기호의 나열만으로 표현한 한 직장인의 하루."

글자 없는 책을 책이라 할 수 있을까? 책에 대한 통념을 송두리째 흔드는 중국 설치미술가 쉬빙(60)의 실험적 저술 '지서'(地書)가 국내에도 상륙했다.

전통의 복원과 현대적 재해석의 작업을 주도해온 쉬 작가는 서예를 기반으로 '차이나 아방가르드' 1세대로 불리는 실험적 예술작품들을 선보여왔다.

2012년 첫 출간된 '지서'는 앞서 저자가 발표한 '천서'와 대비를 이루는 작품으로, 7년간 모은 전 세계의 상징 기호 혹은 이미지 2천500여개를 글자처럼 배열해 의미를 전달한다. 기출간된 중국과 미국, 홍콩, 대만, 멕시코 등지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엉뚱한 형식에 비해 내용은 오히려 소박하다. 평범한 직장인인 미스터 블랙이 어느 날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 사이에 벌어진 24시간 동안 일상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상업적으로는 '대형 사고'(?)가 되리란 우려를 이겨내고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의 '한국자본주의'를 출간했던 1인출판사 '헤이북스'다.

윤미경 대표는 지난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주변의 우려를 딛고 출간에 나서게 된 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성의 사고방식과는 차별화된, 의외의 자극을 주고픈 희망에서"라고 말했다.

첨부한 가이드북을 제외하고, 120쪽에 이르는 책에 포함된 글자라곤 표지에 들어간 저자와 출판사 이름뿐이다. 기호의 나열로만 의미를 전달하는 건 어떤 의도에서일까?

쉬 작가는 한국 독자들을 상대로 한 메시지를 통해 "현재 지구촌 주민들이 서로 다른 수 백가지 언어와 부호를 함께 사용하면서 전통의 문자는 과거에 겪지 못했던 도전을 받게 되었다"며 "현대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읽는 상당 부분이 심벌(상징) 문자이듯 현시대는 다시 상형문자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 같은 상징 기호들의 편집에 있어 주관적 발명과 창조를 배제하고 수집과 정리, 포맷의 작업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지구촌의 사람들이 이미 상징 기호의 자산을 공유하고 있으며,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자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윤 대표는 기호의 나열을 통해 거꾸로 문자가 담당해온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새로운 창의력과 상상력을 북돋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터넷을 통한 의사 교환이 일반화하면서 이모티콘을 통한 소통이 늘어나고 있잖아요. 말로 전달하면 민망하거나 어색할 수 있는 복잡한 감정을 유용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죠. 미리 책을 접한 한 독자는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가족끼리, 친구끼리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지적 유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선한 실험이긴 해도 과연 책이 실제로 팔릴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선다. 윤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돈 많이 벌어놓았느냐"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거나, 만류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은 건 아니에요. 현지 에이전시도 정말 출판할 거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돈 자체보다 제가 출판사를 만들 때 가졌던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호학자들 사이에선 창의적 글쓰기와 발상 훈련의 교재로 삼고 싶다는 제안들이 있었죠. 통념을 벗어나 접근한다면 책의 진가를 알아보실 수 있으리라 확신해요."

그가 안정적인 직장인 대학교 및 그 이력을 기반으로 설립해 운영한 홍보대행업체마저 정리하게 만든 건 출판에 대한 버릴 수 없는 '꿈' 때문이었다.

장하성 교수는 대학교 홍보 업무로 알게 된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을 눈여겨보았고, 지난해 자신이 공을 들인 '한국 자본주의' 출간을 그에게 제안했다. 신생출판사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 할 수 있었으나 과분하다는 생각에 윤 대표는 두 차례 사양했다.

그러나 장 교수 또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점을 비판한 저술 취지에 비춰 신생 출판사 출간이 좋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윤 대표는 장 교수의 뜻을 받아들였다.

"소중한 기회였죠. 그러나 처음 하는 출판 일이라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결과적으로 책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성적표도 좋지 못한 것 같아 장 교수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지서'는 지난해 9월 첫 출간에 나선 헤이북스의 세 번째 책이다. 두 번째 출간 도서는 외교관 박용민 씨의 '맛으로 보는 일본'으로, 음식의 이면에 담긴 문화적 배경을 잘 풀어낸 색깔 있는 여행서라는 설명이다.

윤 대표는 이후에도 저술 경험이 별로 없는 저자들을 발굴해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법을 읽어주는 남자'라고나 할까요? 로스쿨 교수님의 알기 쉬운 법 설명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에요. 또한 7년간 90세 치매 노모를 부양하고 있는 70세 선생님의 일기를 책으로 엮을 생각입니다.

많지는 않아도 헤이북스 만의 색깔을 담은 책들을 지속적으로 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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