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폭 70주년에 맨해튼계획국립공원 출범…원폭해석 주목-1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8-05 06: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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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원폭으로 종전 경축' 일방해석은 안 돼…원폭 참상 알려야"
원폭 덕분에 해방됐으나 사상자 7만 명인 한국의 원폭 해석은?
△ 나가사키 원폭 버섯 구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美, 원폭 70주년에 맨해튼계획국립공원 출범…원폭해석 주목-1

日 "`원폭으로 종전 경축' 일방해석은 안 돼…원폭 참상 알려야"

원폭 덕분에 해방됐으나 사상자 7만 명인 한국의 원폭 해석은?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20세기 일몰을 앞둔 1999년 미국의 언론박물관 뉴지엄이 미국 언론인과 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세기 100대 뉴스에서 인류의 달 착륙(1969)을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오른 게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였다.





당시 20세기 100대 사건, 10대 사건 류의 조사는 설문 대상 집단에 따라 순위가 다르게 나왔으나, 미국의 뉴스통신사 AP가 36개국 71개 고객 언론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10대 사건에서도 원폭 투하가 수위에 올랐다.

이같이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인의 관점에서도 20세기 최대 사건으로 꼽힌 히로시마(1945.8.6)와 나가사키(8.9)에 대한 원폭 투하 70주년인 올해 미국은 암호명 `맨해튼계획(Manhattan Project)'에 따른 원폭의 산실들을 국립역사공원으로 출범시킨다.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와 워싱턴주 핸퍼드, 테네시주 오크 리지 등 3곳에 있는 원폭 연구·제조·시험 시설들에 대한 국립역사공원 지정은 지난해 12월 입법된 '2015 국방수권법'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도 운용 중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 대한 일반인 접근 허용범위 검토 등 국립공원으로 공식 출범을 위한 실무준비가 진행중이다.

맨해튼계획 국립역사공원이 후세에 전하는 맨해튼계획 이야기는 원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가져온 것을 '경축'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그 이야기의 전승 대상도 미국민에게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원폭의 섬광은 핵분열의 힘이 인류사에 생산과 파괴의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깨달음의 빛이기도 했다. 원폭 투하 2년 뒤 원자과학자들이 만든 지구 종말시계가 등장했다.

미국과 소련간 냉전과 핵 군비경쟁은 종말시계의 바늘을 자정 2분 전까지 당길 정도로 인류를 위협하기도 했다. 현재 이 시계 바늘은 자정 3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원자과학자회보(ASB)가 지난 1월22일 종래 5분 전을 가리키던 것을 조정한 것이다. 종말시계의 자정은 핵전쟁으로 인한 멸망의 순간을 가리킨다.

반면 인간이 새로 찾아낸 에너지원인 원자력의 활용은 산업생산과 의료기술의 획기적 진보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보이저, 파이오니어, 뉴호라이즌스 같은 우주 탐사선을 통해 인류의 우주 지평을 태양계 밖으로까지 확장하는 일도 가능케 했다.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파괴와 무한 생산이라는 원자력의 양면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순간부터 과학과 사회의 관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세계적 논쟁과 성찰을 일으켰다.

미소간 냉전으로 인한 핵종말의 긴장이 풀어진 시대에, 맨해튼계획 국립역사공원은 흉물 체르노빌 원전, 후쿠시마 원전과 함께 원자력의 양면을 계속 인류에게 일깨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한 미국 주류의 해석은, 항복을 거부하고 버티던 일본을 굴복시킴으로써 특히 일본 본토에 대한 상륙 공격시 예상됐던 미국과 일본 양측의 막대한 인명 피해를 줄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맨해튼 계획 국립역사공원이 원폭의 탄생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경축'하는 이야기를 주로 담고 풀어내는 것 아니냐고 세계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이 경계하고 나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들이 이 공원 지정의 주역인 미국의 원자력유산재단(AHF) 측에 원폭 역사를 "일방적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들은 원폭의 버섯구름 아래 펼쳐졌던 인간의 참상도 함께 보고, 인류 종말을 가져올 핵무기를 지구 상에서 없애는 평화의 사상을 퍼뜨리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원폭 해석도 공원에 담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해석에는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원폭 사용의 군사적 필요성과 민간인의 대량 살상을 가져온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바탕에 깔고 있다.

1995년 미국 수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려다 미국 내 반대여론에 막혀 무산됐던 원폭 투하의 참상을 알리는 전시회가 20여 년 만에 지난 6월부터 열리고 있는 것도 일본 측의 해석을 미국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사회가 `히바쿠샤'(생존 피폭자)를 내세워 원폭의 희생자로서 히로시마 원폭투하에 대해 미국 주류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면, 한국은 어떤 해석을 누구를 향해 주장해야 할까?

한국은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덕분에'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됐다. 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20만 명 중 5만 명이 한국인일 정도로 한국은 일본에 버금가는 원폭 희생자이기도 하다. 사망자 다수가 일제에 강제징용된 사람들인 점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원폭에 대한 '해방'과 '희생' 두 해석중, 원폭 사망자와 생존 피폭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낮은 관심으로 미뤄 볼 때 현재로선 '해방'이 한국 사회의 주류 해석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원폭 사망자와 생존 피폭자, 그들 자손들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북한의 핵무기도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는 주장이나, 핵 강대국들의 핵무기는 모두 '네 땅'을 겨냥한 것 반면 한국에선 '내 땅'에 쓰겠다며 전술 핵무기를 재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슴없이 활개치는 토양이기도 하다.



◇ 미국 "일본의 `원폭 해석' 고려"…실제론 난제





지난 5월1일 뉴욕에 있는 국제교육연구소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장들을 포함한 일본 대표단을 맞은 AHF의 신시아 켈리 이사장은 공원이 원폭 참상을 "은폐"하거나 맨해튼계획을 "과학기술의 승리로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HF 홈페이지에 따르면, 켈리 이사장은 "원폭은 좋게든 나쁘게든 여러모로 미국과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았다"며 "우리는 이 역사를 미국과 국제적 관점 양면에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의 다른 국립역사공원들이 "남북전쟁 등 다른 논쟁적인 역사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맨해튼계획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다면적인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개방적인 해석을 제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대표단은 피폭자들이 겪은 고통을 설명하고 공원의 해석이 원폭 투하 설명으로 끝나지 말고 "버섯구름 아래에서 일어난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12월 공원 입법 때는 다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 시장이 미국의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공원이 "(일본에 대한) 원폭 공격의 정당화와 핵무기 개발의 촉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AHF와 면담에서 일본측은 AHF 관계자들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문을 초청하기도 했다.

일본 사회는 원폭 희생자 해석에 대한 세계적 공인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로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문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의 비전을 밝혔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듬해 처음으로 히로시마 위령제에 존 루스 당시 주일대사를 참석토록 지시함으로써 피폭자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표시했다.

당시 루스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기대하는 질문에 "임기 만료 전에 방문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실제로 임기 만료전 히로시마 방문을 결행, 미국과 일본간 원폭 투하의 '과거사'에 내재된 긴장을 해소하려 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본 피폭자들 가운데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따르는 미국 측의 정치적 부담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본 시민사회와 다르게, 일본 정부도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부담스러워 하는 면이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2011년 9월28일 자 사설에서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미국 외교문서를 인용, 2009년 9월 오바마 대통령의 첫 방일을 앞두고 일본 측이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소극적인"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실제 방문이 이뤄졌을 경우 일본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침략 책임을 다 치렀느냐는 논란을 재연시킬 것을 우려한 탓일 수 있다고 신문은 추측했다.

AHF는 "맨해튼계획과 그것이 세계에 남긴 유산을 해석하는 문제를 놓고 일본과 지속적으로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난제가 될 것"이라고 스티븐스공대의 알렉스 웰러스타인 조교수는 예상했다.

AHF의 자문위원인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일본 대표단 면담 후기에서 일본 측의 우려와 요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과거에 대해 동정과 공감을 가졌다고 해서 그에 따른 특정 사관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주류의 '해석'이 원폭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동정을 넘어 일본 측이 원하는 대로 민간인에 대한 원폭투하의 정당성 결여, 군사적 불필요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맨해튼계획과 그 결과인 원폭 투하에 대한 해석 논란에 미국과 일본 모두 중앙정부는 끼어들지 않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맨해튼계획역사공원 지정 자체도 민간단체와 과학계, 의회가 추진한 것이지, 행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히로시마 원폭 전시회가 우여곡절을 겪은 것으로부터도 원폭 투하에 얽힌 미·일 과거사가 양국 정부 사이에 표면에 부상할 때 생길 긴장을 짐작할 수 있다.

원폭투하 50주년인 1995년 수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히로시마 상공에 원폭을 투하했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전시된 것을 두고 미국 내에서 논란이 크게 일었었다.

당초 계획했던 원폭 사망자 유품 등 전시물을 모두 바꾸고 규모가 대폭 축소된 것이었는데도 그랬다. 태평양전쟁 참전 군인들 사이에서 이 전시회가 일본인들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그린다며 강한 반발이 일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전시를 거부당한 유품들에 전시공간을 내줬던 워싱턴의 아메리칸대 박물관에서 20년 만에 다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엔 오전 8시15분에 바늘이 멈춘 회중시계, 흔적없이 사라진 여학생의 도시락, 불타버린 옷가지 등 유품들과 뒤틀리고 오그라붙은 주검과 화염에 휩싸인 채 울부짖는 사람 사진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특히 히로시마 출신의 유명 화가 부부 마루키 이리와 마루키 도시가 원폭의 공포와 참상을 묘사한 대형 그림 6점은 몸서리쳐지는 묘사 때문에 20년 전 워싱턴에선 전시장을 찾지 못해 미네소타에서만 전시됐던 작품들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전시회에 관한 미국과 일본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비교하면 양국 간 상이한 관점은 여전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전시회에 대한 양국 언론의 관심도부터가 다르다.

미국의 AP통신은 개막일인 지난 6월13일 전시회가 "희생자로서 일본인의 관점"을 보여줘 "미국의 참전 노병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자신들의 군국주의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려 하는 일본의 태도"를 들었다.

일본군의 필리핀 침공 때 포로가 됐던 미군과 그 유족들로 구성된 ‘바탄·코레기도르방어미군추모회’(ADBCMS)의 잔 톰슨 회장은 원폭이 "누구도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원폭사용이 부당했다는 견해를 확산시킬까 우려스럽다"고 AP에 말했다.

이에 비해 일본의 뉴스통신사 교도(共同)는 52세 여성 관람객이 "미국에는 원폭 투하가 필요했다는 의견이 있으나 과연 그게 옳았는지 아닌지를 더 논의해야 한다"고 한 말을 전했다.

일본의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원폭 투하가 "군사적으로 불필요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었다는 입장을 가진 피터 쿠즈니크 아메리칸대 핵연구소장과 인터뷰를 길게 전했다.

그는 "미국의 분위기가 좀 바뀐 듯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진지하고 공개적이며 솔직한 토론을 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사히(朝日) 신문도 20년이 흐르면서 미국의 분위기가 참전세대의 퇴장과 핵발전소 문제 등장 등으로 인해 "상전벽해"처럼 변해 피폭자들의 얘기에 대해 미국인들이 더 수용적이 됐다는 일본인 피폭자들의 말에 중점을 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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