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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정태남은 건축가가 본업이지만 전문성 있는 분야가 미술, 음악, 언어, 여행, 집필에 이르는 팔방미인이다. 2015.7.30 kjhpress@yna.co.kr |
<인터뷰> 정태남, 영원한 여행자 꿈꾸는 이탈리아 건축가
건축, 미술, 음악, 여행 전문 '팔방미인'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건축학을 배웠어요. 미국 유학을 준비했는데 우연히 이탈리아 국가 장학생 선발 공고를 보고 응모해서 운 좋게 합격했죠. 이탈리아어도 서툰데 건축 도면을 보며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하고 교수와 논쟁을 하는 것이 시험이었죠. 역사와 문화, 예술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한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그대로 주저앉느냐, 그대로 일어서느냐’를 무척 고민했어요. 결국 그때마다 일어서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탈리아 역사와 문화, 예술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심취할 수 있었죠.”
정태남의 본업은 건축가다. 하지만 대학 시절 전공인 대기과학(기상학)에서 건축학으로 진로를 바꿨듯이 그의 활동 영역은 언어, 미술, 음악, 여행 등 다양하고 폭도 넓다.
7개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의 귀재이자 1년에 한 권씩 꼬박꼬박 책을 써내는 작가, 로마에 있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본부에 작품이 소장돼 있을 정도의 미술가 등 다방면에서 전문적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7년에는 한국에 이탈리아를 많이 알렸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 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탈리아 공인 건축가인 정태남은 1979년 이탈리아에 간 뒤 처음 10여 년간은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며 이탈리아를 연구하고, 졸업 이후엔 건축가로 활동하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없었다. 사실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1995년에 한 달 정도를 머물며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의 편리함과 사람들의 친절함이 크게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을 계속 늘려 갔다. 현재 그는 1년의 절반은 로마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한국에 올 때마다 그는 건축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집필과 기고, 강연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또 책을 통한 이탈리아 알리기는 이제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스펙을 쌓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탈리아인보다 이탈리아를 더 잘 아는 건축가’란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서울에서 오래 산 외국인 중에 나보다 서울을 훨씬 잘 아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의 집에 가면 특징이나 세세한 것이 눈에 잘 보이듯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로마인 중에는 콜로세움을 평생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탈리아를 보는 그런 시선으로 한국을 봤더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외국을 호기심을 갖고 보면 자기 문화도 유심히 또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얼마 전 전남 순천을 갔는데 그곳의 풍경과 문화, 역사 등이 무척 흥미로웠다.
-- 건축가, 미술가, 여행가, 작가 등 활동 분야가 다양하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나.
▲ 평생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왔다. 어떤 것이 흥미를 끌고 좋으면 관심을 두고 직접 행동에 옮긴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물론 호기심이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능과 노력이 있어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나에게는 건축가, 미술가, 여행가, 작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다.
-- 7개 언어를 구사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
▲ 고등학교 2학년 때 클래식 기타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악보에 표기된 단어가 모두 스페인어였다. 그래서 책을 보며 독학했다.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그렇게 시작됐다.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웠고, 대학 1학년 때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을 동경해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어만 공부하면 따분하지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호기심을 갖고 하면 즐겁게 습득할 수 있는 것 같다. 현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한국어 이렇게 7개 언어를 하고 있다. 유럽의 다른 언어도 모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
▲ 좋은 영화감독은 시나리오, 영상, 음악 등 모든 세세한 부문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영상이 보기 좋기만 해선 안 된다. 모든 장면에 들어간 세세한 것들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사용한 음악도 설명이 되어야 한다. 건축도 같다고 생각한다. 건축에서 이유가 없는 부분은 결코 없다. 건축가는 영화감독,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
-- 작업한 건축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 1980년 이탈리아 남부에서 큰 지진이 발생해 2천500여 명이 사망했다. 그때 나폴리 인근의 중세 마을인 산탄젤로 데 롬바르디란 곳도 큰 피해를 봤다. 마을의 중심 광장을 다시 짓는 일을 하게 됐다. 원래 재건을 맡은 건축가가 의뢰해 디자인을 맡게 됐는데 역사성을 존중해 디자인을 새롭게 했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 캠퍼스 건물과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건축 등에 참여했다.
-- 이탈리아와 한국의 건축은 어떻게 다른가.
▲ 이탈리아에선 도시를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 노력한다. 유럽에선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런 건물이 들어서면 많은 비판을 받는다. 정반대로 한국은 너무 자주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체계화되고 질서가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특히 문제다. 스탈린 통치 기간의 소련에서도 아파트를 그렇게 멋없이 짓진 않았다. 물론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아름다운 주택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물론 한국 건축의 장점도 있다. 다양한 모습의 건물이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되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 서울의 건축물을 변신시킬 전권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
▲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은 손을 대기가 힘들다. 2천 년 전 로마는 인구 100만 명의 대도시였다. 하지만 길은 비좁고 건물도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러다 네로 황제 때 대화재로 3분의 2가 불에 탔다. 이후 길을 넓히고 건물 사이 간격도 늘리고 하며 지금의 로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도시를 변화시키려면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
--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한 권씩 책을 내고 있다. 이유가 있나.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로마인 이야기’가 출간됐다. 아쉬웠다. 그러다 시오노 나나미를 만날 기회가 수차례 있었다. 한 번은 언쟁이 붙었다. 이탈리아 역사를 혼자만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1년에 한 권씩 책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히 1년에 한 권씩 책을 출간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11번째 책은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이다. 그동안 이탈리아의 건축, 역사, 문화에 관한 것만 써왔는데 이번에는 프라하, 빈,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등에 관해 다뤘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했던 나라들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유럽 건축 여행을 떠나는 이에게 조언을 한다면.
▲ 숲을 보고 나무를 보듯이 전체를 보고 건축물을 보라고 하고 싶다. 도시 전체를 보고 왜 길이 거기에 있는지, 그곳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야 한다. 사진에 예쁘게 찍히는 건물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은 건축은 시간이 결정한다. 예를 들어 녹슨 철판을 이용한 건물이 있는데, 이런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되고 만다. 모든 것은 시간이 얘기해준다.
-- 최고의 보물과 여행 가방에 꼭 챙겨 가는 것이 있다면.
▲ 지금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최고의 보물인 것 같다. 만약 그게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존재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아니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시간에 속박되지 않고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가 하는 여행은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돌아보거나 휴양지 해변에 누워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건축, 역사, 예술을 찾아다니고 탐구하는 여행이다. 또 여행할 때는 항상 카메라를 3개 정도 가져간다. 잃어버릴 경우를 대비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카메라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행을 많이 하지만 ‘영원한 여행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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