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CTV 수사> ③ "현장 뛰어다니는 '뚜벅이 수사'입니다"
새마을금고 강도사건 해결 '일등공신' 정성광 경사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폐쇄회로(CC)TV 분석을 사무실에서 비디오테이프만 돌려보는 일로 여기면 오해입니다. 형사들과 현장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그때그때 현장에서 영상을 분석하죠. 하도 걸어 다녀서 '뚜벅이 수사'라고 합니다."
서울 관악경찰서 강력5팀 정성광(43) 경사는 최근 서초구 잠원동 새마을금고 강도사건 수사에서 CCTV 분석을 맡아 용의자 특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이 최근 'CCTV 명인'으로 분류한 44명의 경찰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흔히 CCTV 분석이라면 형사과 사무실에 앉아 영상만 들여다보는 일로 여기기 쉽다. 정 경사가 말하는 CCTV 수사는 다르다. 영상을 분석해 단서를 찾아내는 '정신노동'이자, 현장을 땀 나게 뛰어다니는 '육체노동'이다.
정 경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수사에서도 더운 여름날 범죄현장 주변을 돌아다니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사건 발생이 이달 20일 낮 12시10분이었죠. 저는 23일 투입돼서 나흘간 돌아다녔습니다. 하도 걸어 다녀 발목이 안 좋을 지경이에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CCTV가 상당히 많거든요. 걸어 다니면서 일일이 확인하고 추적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 관리가 아닌, 개인이 설치한 CCTV는 함부로 들여다볼 수도 없다. 경찰이랍시고 불쑥 찾아가 "CCTV 좀 봅시다"라고 한들 무조건 영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정중하게 협조를 구하는 것도 능력이다.
"먼저 범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사정을 설명하고 최대한 친절하게 협조를 구합니다. 이건 의무예요. 법정에서 CCTV의 진위를 가릴 때도 중요하게 작용하거든요. CCTV 소유주가 영상의 진실성을 보증해줘야 한다는 얘기죠. 이번 사건에서도 '은행강도 사건이다. 여기 앞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못 잡고 있으면 또 범행해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정중히 부탁했죠."
어렵사리 발품을 팔아 CCTV를 입수하면 본격적인 분석 작업이 시작된다. 이번 사건처럼 범인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경우 이동 속도가 빨라 추적이 더 어렵다. 도로 전체를 비추는 CCTV가 의외로 많지 않은 점도 난관이다.
정 경사는 주유소나 백화점처럼 규모가 큰 매장들은 평소 주차 시비가 잦아 도로까지 비추는 CCTV를 설치한다는 점을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인근의 한 백화점 CCTV가 도로 전체를 향한 덕분에 용의자가 탄 오토바이를 잡아낼 수 있었다.
차량을 추적하는 정 경사만의 노하우도 용의자 이동경로 추적에 큰 도움이 됐다. 용의자가 오토바이를 탔다고 해서 오토바이에만 집중하지 않고, 앞뒤 차량을 함께 추적하면 범인의 이동 경로를 한결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정 경사는 용의자 최모(53)씨가 범행 사흘 전 전 현장을 미리 탐방하러 왔다가 과천 경마장으로 간 사실을 이런 작업을 통해 밝혀냈다.
그는 앞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방화미수 사건, 올해 3월 관악구 봉천동 여중생 살인사건에서도 CCTV 분석을 맡았다.
원 전 원장 사건은 영상을 찾았지만,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해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정 경사가 CCTV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원본 파일이 훼손됐을 개연성이 있다며 판사가 증거 인정을 안 했어요. 피의자가 집에서 나와 범행 현장까지 가는 영상이 다 있었는데, 완벽한 원본도 아니었고 허술한 점도 있었다는 거죠. 당시 실패를 바탕으로 다른 형사들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료 경찰관을 상대로 한 강의 등을 통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정 경사는 일선 형사들이 기본적인 요건만 충족해도 CCTV만으로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고 조언한다.
영상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영상을 함께 돌려보며, 원본을 내려받았음을 제공자에게 주지시키고 서명을 받는 정도는 해야 증거능력을 안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 경사는 CCTV가 시민에 대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일반인들이 걱정하듯 수사기관이 CCTV 영상을 마구 수집하거나 보관하지 않는다며 "수사 목적으로만 수집하고 기한이 지나면 파기한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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