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여름?'…역대급 실적 정유업계 하반기는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 2011년 한 해에만 무려 3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GS칼텍스 2조원, 에쓰오일 1조6천억원 등 다른 정유사들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다. 2011년 당시 국제유가가 급등, 배럴당 100달러가 넘어가면서 주유소 휘발유값은 리터(ℓ)당 2천원을 훌쩍 넘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이익이 정유사에게만 돌아간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고 기름값을 낮추라는 성난 민심(?)에 부닥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정유업계는 2011년 이후 4년 만에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뒤 V자 반등에성공한 모습이다.
특히 2011년과 달리 저유가 상황에서 실적이 개선되면서 '정유업계는 고유가에서 고마진을 낸다'는 고정관념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다만 정유업계 마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이 최근 급락하고 있어 3분기 이후에도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 SK이노베이션 영업이익 1조원…정유업계 부활
26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분기 1조원(9천879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이는 분기 기준으로 2011년 1분기(1조3천562억원)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규모다.
특히 본업인 정유사업에서 7천5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한 점이 눈에 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사업은 2011년 1분기 8천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뒤 내리막을 걸으면서 적자와 흑자를 반복했다. 결국 화학과 윤활유, 석유개발 등 '복수전공'하던 비정유사업에 실적이 좌지우지됐다.
지난해 정유사업에서 1조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이 발생하면서 37년만에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반년 만에 정유사업을 중심으로 역대 두 번째로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룬 셈이다.
정유업계 맏형인 SK이노베이션 뿐만이 아니라 에쓰오일 역시 2분기 6천13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깜짝실적)'를 기록했다.
에쓰오일 역시 핵심인 정유부문에서 4천6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전체 실적을 견인했다.
아직 실적이 발표되지 않은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역시 정유부문을 중심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루면서 2분기에 역대급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저유가에 깜짝실적…'문제는 정제마진이야'
정유업계의 2분기 깜짝실적에 대해 시장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유업계는 고유가에 고마진을 낸다'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달리 지난해 말 이후 폭락한 국제유가가 여전히 배럴당 50달러대 초반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이같은 실적을 달성, 기존의 공식을 완전히 깨뜨렸다는 평가다.
정유업계는 2분기 호실적의 배경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정제마진과 함께 유가의 점진적 상승으로 인한 재고평가수익을 들고 있다.
정제마진이란 원유 1배럴을 공정에 투입했을 때 공급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말한다.
원유를 정제해서 나온 여러 다양한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가, 운임, 동력비 등을 제외한 마진을 의미하며 보통 배럴당 달러로 표시한다.
SK에너지의 내부 분석에 따르면 정제마진이 배럴당 1달러 오를 경우 연간 기준으로 2천8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국제유가의 경우 1달러 상승하면 재고손익과 마진효과 등으로 300억원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즉 유가 1달러 상승보다 정제마진 1달러 상승이 정유사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10배 가량 큰 셈이다.
정제마진은 정유사별로 다르지만 보통 싱가포르 시장의 역내 평균을 추정해 적용하는데 국내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시장의 정제마진 3∼4달러를 이익의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즉 정제마진이 3∼4달러 이상이면 수익이, 이하면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3분기까지 국제유가가 평균 배럴당 100달러를 유지했지만 정제마진이 3∼6달러에 그쳐 정유사업은 적자에 빠졌다.
그러나 올해 들어 유가가 40∼60달러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도 정제마진은 역대 최고 수준인 배럴당 7∼8달러를 기록했고 이는 정유사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 3분기 정제마진 급락…하반기 실적 전망 엇갈려
시장 기대를 뛰어 넘는 2분기 실적에도 불구하고 정유업계의 하반기 실적에 대해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석유제품의 수요 회복 여부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다 유가 급락으로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고공비행하던 정제마진이 최근 급락하면서 다시 정유업계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배럴당 8달러대를 기록했던 정제마진은 이달 들어 5∼6달러대로 2달러 이상 하락했다.
'정제마진 상승 → 정제시설 가동률 상승 → 역내 석유제품 공급 과잉 → 정제마진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하반기 실적은 글로벌 수요가 어느 정도 회복할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경쟁국의 신증설 설비가 얼마 만큼의 가동률을 보일지 등의 변수에 좌우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호재도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 핵협상 타결에 따른 최대 수혜자로 아시아 지역 정유업체를 꼽았다.
산유국 간 원유 공급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 대규모 수입업체인 아시아 정유사들을 잡기 위해 판매가 인하나 운송비용 감면 등의 혜택 제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며 한국이나 일본 정유업체에 더 비싸게 원유를 공급했던 상황이 역전돼 구매자 우위 시장(Buyer's Market)이 펼쳐지는 셈이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공급과잉 등 펀더멘털은 변한게 없는 만큼 실적 호조는 잠깐 왔다가는 '알래스카의 여름' 같은 것일 수 있다"며 상반기 실적 호조의 주요인이었던 정제 마진이 하반기에 악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다시 도래할 겨울폭풍에 대비해 올해가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할 예정"이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유업계의 2분기 깜짝실적이 '알래스카의 여름'이 될지, 아니면 여름철 아침 햇살 마냥 '눈부신 하루'의 예고편이 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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