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선의용대 역사 알리는 중국인 상룽성 씨 (한단<중국>=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조선의용대의 열사를 알려온 상룽성(尙榮生.60)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장. 토박이 중국인인 상 관장은 한단(邯鄲)시에 있는 국립묘소인 진지루위(晉冀魯豫) 열사릉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연구해왔다. 2015.7.23 okko@yna.co.kr |
<광복70년> 조선의용대 역사 알리는 중국인 상룽성 씨
조선의용군기념관 탄생의 산파…30년 넘게 연구·홍보 매달려
(한단<중국>=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이런 유적지들이 없었다면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갈래가 그대로 잊혀버렸을 겁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 조선의용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기 힘들었겠죠."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한단(邯鄲)시에 위치한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의 상룽성(尙榮生·60) 관장은 조선의용대 전문가로 통한다.
기념관 관리를 책임지는 그는 이 일대에서 일제에 맞서 싸운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알리고, 유적지 관리와 관련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올 초 직장인 진지루위(晉冀魯豫) 열사릉원에서 정년퇴직했지만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중국인인 그가 이처럼 이웃 나라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품게 된 계기는 한 의용대원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였다.
1970년대부터 국립묘소인 진지루위 열사릉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1984년 신문을 통해 한 조선의용대원의 이야기를 접했다.
'관건'이란 이름을 가진 지린성(吉林省) 출신의 이 의용대원은 1984년 세상을 뜨면서 옛 동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그는 조선의용대를 이끌다 일본군과 전투에서 숨진 윤세주·진광화 열사의 옛 묘소 옆에 안장됐다.
상 관장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관건의 이야기야말로 진정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독립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는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이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1938년 10월 중국 정부의 임시수도인 허베이(湖北)성의 한커우(漢口)에서 조직했다.
의용대는 전투보다는 무장 선전에 주력하며 항일 전쟁에 동참했고, 이들 중 일부가 1941년 봄 중국 공산당의 항일 근거지인 타이항산(太行山)으로 향했다.
타이항산 주변에 자리 잡은 의용대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 아래 일본군과 싸우며 무장 투쟁을 이어갔다.
상룽성 관장은 이 지역에 남은 의용대의 흔적을 더듬어갔지만, 연구는 쉽지 않았다. 한·중 수교 전이라 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고, 한국과 교류도 힘들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의용대 유족들이 소장 자료를 갖고 한단으로 찾아오면서 그의 연구에도 탄력이 붙었다.
200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조선의용대를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는 또 다른 기폭제가 됐다.
상 관장은 "당시 학술대회에 참가해 많은 한국인 학자로부터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며 "그 이후 중국 지방정부에 이러한 내용을 알리자 지방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관리와 보호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그와 중국 지방정부의 노력은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관의 탄생으로 열매를 맺었다.
윤세주·진광화 열사의 옛 묘소 아래 위치한 기념관은 지난 2004년 중국 한단시와 서(涉)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열었다.
중국 한단시 정부는 시 정치협상위원이기도 한 그에게 관장 자리를 맡겼다.
상 관장은 "북한과의 관계와 이데올로기 문제 등 민감한 이슈들이 얽혀 있어 기념관 건설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기념관은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알리고, 이 일대 유적지를 잘 보호하는 토대"라며 "중국 정부가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힘줘 말했다.
윤세주·진광화 열사의 묘소가 광복 후 진지루위 열사릉원으로 이장된 것도 의용대에 대한 중국 정부의 예우를 보여주는 근거라고 상 관장은 설명했다.
열사릉원에는 200여 명의 연대장급 이상 열사가 모셔져 있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은 윤세주·진광화 열사뿐이다.
2000년대 들어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받으면서 한단에도 한국인 탐방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상 관장은 한국에서 탐방단이 올 때면 통역을 담당하는 한단시 공무원 왕춘샹(王春香·45) 씨와 함께 이 일대 유적지를 오가며 조선의용대의 역사를 알려왔다.
상 관장은 "이 일대만큼 중국에서 조선의용대 유적지가 잘 보존되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도심과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고, 중국 정부가 환경보호 차원에서 지나친 개발을 자제해온 점이 유적지 보호에 도움이 됐다"며 "한국과 수교 이후 한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해 중국 정부가 관리에 신경을 쓴 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상 관장은 이 일대 유적이 당시 의용대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욱 관심을 끌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 관장은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지만 나이가 있으니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일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해야 하지만 지방정부와 조율하며 연구와 홍보를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다.
"관심 없다고 방치하면 이런 유적지들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알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