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2차대전 참전노병 70년세월 넘어 '적에서 동지로'
태평양전선 전사자·실종자 유해송환 위해 손잡아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앞두고 태평양 파푸아 뉴기니 전선에서 적(敵)으로 싸웠던 미국과 일본 참전 노병 2명이 만나기로 했다.
특히 이들의 상봉 목적은 단지 화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정부에게 전사자 발굴 및 실종자 파악, 유해 본국 송환 등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올해 95세 동갑내기인 미국인 리언 쿠퍼 씨와 일본인 니시무라 고키치 씨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에 사는 쿠퍼 씨는 21일(현지시간) 니시무라 씨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떠날 예정이다.
두 사람은 1943년 2차 대전 와중에 파푸아뉴기니 전선에서 각각 연합군과 일본군으로 참전했다. 당시 쿠퍼 씨는 파푸아 뉴기니를 비롯한 태평양 전선에 연합군을 상륙시키는 함선 부대장이었으며, 니시무라 씨는 보병 상사였다.
파푸아 뉴기니의 '코코다 트랙'(the Kokoda Track)은 2차 대전 중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으로 양쪽에서 모두 1만 9천95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전사자는 연합군 전사자보다 3배 많은 1만 3천여 명에 이르지만, 일본 정부는 전사자 유골 송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니시무라 씨는 1979년 동료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아예 파푸아 뉴기니에 정착해 전사자 시신 발굴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2007년 몸이 쇠약해져 귀국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일본군 전사자 시신 350구를 발굴해 본국으로 송환했다.
니시무라 씨의 활동은 호주 언론인 찰스 하펠이 쓴 '코코다의 토착인'(Bone Man of Kokoda)이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책에서 "기진맥진해 움직일 수 없는 전우들을 남겨두고 해변으로 소개됐을 때 '살아있든 죽든 전우들을 본국으로 데려가 가족들 품에 안기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쿠퍼 씨도 2008년부터 태평양 중부 길버트 제도의 타라와 산호섬에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 전사자와 실종자 실태 파악과 유해 송환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의 활동은 스티브 바버의 45분짜리 '타라와로의 귀환: 리언 쿠퍼'(Return to Tarawa: the Leon Cooper Story)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소개됐다.
쿠퍼의 이번 도쿄행(行)에도 바버 감독과 함께 매튜 호슬 프로듀서가 다큐멘터리 '뉴기니로의 귀환'(Return to New Guinea) 제작을 위해 동행한다.
니시무라 씨는 쿠퍼 씨와의 만남을 앞두고 일본군에 대한 증오가 풀렸는지를 걱정했다고 한다.
이에 쿠퍼 씨는 로스앤젤레스(LAT)와의 인터뷰에서 "증오심을 언제까지 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증오했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면서 "그들보다 오래 산 것이 복수"라고 했다.
그는 "타라와와 뉴기니를 비롯한 태평양 전선에서 내가 수송한 병사들을 잊지 않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 전사자나 실종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내게 여전히 몽마(夢魔)"라고 했다.
쿠퍼 씨는 "태평양 전선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연합군이 8만여 명에 이른다"면서 "미국 정부가 전쟁터에서 한 사람이라도 남겨두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엄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일본 방문 기간에 주일 미국대사와 호주대사를 만나 전사자 유해 발굴과 송환 문제를 협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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