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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제정치에 내셔널리즘 뚜렷…세계 곳곳서 갈등·충돌
(서울=연합뉴스) 정선미 기자 = 그리스 위기로 유로존 균열이 심해지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 거리에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나치 캐리커처로 사용하고, 독일 내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등 이른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부활로 우려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나타나는 내셔널리즘은 더 노골적이다.
오는 9월 개최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항복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에서는 공산주의보다는 내셔널리즘의 기치가 더 강조될 예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의 수위를 높이면서 유럽중부와 동유럽 지역에서의 내셔널리즘도 살아나고 있다.
허핑턴 포스트는 세계화가 내셔널리즘의 불씨를 끄기는커녕 오히려 오히려 활활 타오르게 했다고 분석했다.
'하나의 세계'나 '유럽의 통일'은 이상일 뿐이고 전세계적인 자본 흐름은 다국적 기업을 더 탐욕스럽게 만들고, 부유하지 못한 국가에서의 복지나 연금 지출은 '긴축'을 불러오면서 '국가주의'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 소재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제레미 샤피로 연구원은 "세계화로 나타난 파괴적인 현상은 국가적 정체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우아하게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 구조를 모색했으며, 이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내셔널리즘은 현대 인간사에 가장 강력한 힘"이라면서 "유럽에서 분명하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다른 지역에도 다시 한번 불이 붙고 있다"고 말했다.
◇ 그리스와 독일의 대립, 유럽 분열의 시발점
지난 5일 그리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의 최대 승자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와 내셔널리즘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분석했다.
또 유럽에서 유럽 정상들이 모이는 브뤼셀과 위기의 진앙인 그리스에서 지도자들의 냉정한 사태 인식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럽의 지정학적 취약성은 물론 더 큰 혼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가디언의 경고는 이후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리스 사태를 계기로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을 원하는 프랑스 중심의 남유럽 국가와 유로존에 속할 자격이 없는 국가는 탈퇴시켜야 한다는 독일 중심의 북유럽 국가가 대결하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 그리스가 유로존이 요구하는 협상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며 '백기투항'하면서 이를 관철시킨 독일을 잔인하다고 비판하는 움직임은 다소 과격하게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보이콧독일(Boycottgermany)'이라는 해시태그(#)가 확산하며 독일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메르켈 총리보다 더한 강경노선을 보인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칼을 든 이슬람국가(IS) 전사로 풍자되고 있다.
유로존에서 재정위기와 이에 따른 국가주의는 그리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미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스페인도 비슷한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긴축을 강요하는 유로존이나 글로벌 은행을 향한 '국가주의적 분노'가 커지는 상황이다.
내셔널리즘의 부활은 유럽에서 그치지 않는다.
◇ 중국의 노골적 내셔널리즘…아시아 국가 모두 긴장
중국이 경제 및 정치적으로 점점 강력해지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고, 이들 국가는 공포에 찬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바 있는 헨리 키신저는 최근 한 연설에서 "중국은 '힘의 균형'을 믿지 않는다"면서 "중국에 힘의 균형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이 때문에 그들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도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에서 중국이 문화 및 경제적인 힘을 강조하면서 '소프트 파워'를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이 내셔널리즘을 부채질하고 공산당에 대한 통제권을 강력하게 쥐고 있는 한 소프트파워는 언제나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중국해(South China Sea)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으로 이미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사이의 갈등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고, 중국의 도발을 두고 볼 수 없는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위헌 논란에 휩싸인 집단 자위권 법안을 중의원(하원)에서 강행 처리해 중국과의 관계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번 법안은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 교전권을 부정한 일본의 헌법 9조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베이징대학의 왕신셩 교수는 "법안의 통과로 중국과 일본 모두에서 내셔널리즘이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라면서 "새로운 법안으로 주변국들 사이에서 전쟁 때 일본의 침략에 대한 기억이 살아날 것이고 아시아 지역에서 군비경쟁이 촉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으로 동유럽 내셔널리즘도 활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으로 중부유럽과 동유럽 지역에서 내셔널리즘과 반(反)러시아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런던정경대의 크리스티앙 니토우 연구원은 지난 8일 기고를 통해 중부유럽과 EU 소속의 동유럽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내셔널리즘을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크라이나 위기는 이들 국가에서 '내셔널리즘 수사학'의 수문을 다시 열어젖혔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도발은 동유럽 지역이 안전하거나 분쟁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내셔널리즘이 살아나는 계기라고 지적했다.
이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샤피로 연구원이 밝힌 "국가는 궁극적으로 '외부'의 영향력에 대해 자국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샤피로 연구원은 "경제나 문화, 그리고 물리적 안보의 측면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전 세계가 더 위협적으로 바뀔수록 더 많은 이들이 국가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발을 국가주의 및 애국주의로 호소하며 우크라이나 내의 분쟁을 '파시즘에 대한 성스러운 전쟁'으로 규정하고자 한다는 것이 니토우 연구원의 분석이다.
그는 또 이런 러시아에 대항해 중부유럽 및 동유럽 지역에서는 공공영역에서의 논의가 군사주의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면서 징병제 주장이나 미군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주둔을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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