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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자료사진) 중국 난징시에 위치한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 |
"군국주의 시절 일본 영어교과서까지 전쟁 부추겨"
에리카와 교수, 전쟁시기 영어교과서 3천권 분석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1945년 패전때까지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절 학교 영어 교과서에까지 전쟁을 부추기는 내용이 난무했던 실태를 일본인 연구자가 밝혀냈다.
영어 교육사를 연구해온 에리카와 하루오(江利川春雄) 와카야마(和歌山)대학 교수는 초·중·고등학교 등에서 사용된 3천 권 이상의 영어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영어교과서는 전쟁을 어떻게 가르쳤나'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고 아사히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책에 의하면, 1897년의 한 중학생용 영어 교재에는 개선 병사의 그림에 '군인 아저씨 그림이네요. 용감한 모습이죠'라는 설명이 붙었고, 러일전쟁(1904∼1905년) 후인 1907년에 출판된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는 전쟁놀이를 하는 어린이의 그림을 사용해 발음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전쟁놀이를 해봅시다. 틀림없이 재미있어요"라는 말이 들어간 여학교용 교과서도 있었다.
또 1917년에 나온 어떤 중학생용 교과서는 대화 형식으로 러일전쟁 당시 동해에서 벌어진 해전을 설명한 영문을 제시해 놓고 이를 응용한 자유 영작문을 과제로 제시했다.
본격적인 중국 침략의 출발점인 만주사변(1931년) 이듬해인 1932년에 출간된 한 중등 실업학교용 영작문 교과서에서는 중국에서 폭사한 일본군인 3명에 대해 영어로 설명한 뒤 "당신은 그들과 같은 용감한 군인이 되겠습니까"라고 묻고 "네, 저는 나라를 위해서 죽을 생각입니다"라고 답하는 문장이 영어와 일본어 번역문으로 등장했다. 대포와 탱크 등으로 알파벳을 가르치는 실업학교용 교과서도 있었다.
에리카와 교수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 등 근대 일본의 전쟁사를 영어 교과서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군국주의 시기 국정 교과서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중학교는 민간에서 펴낸 검정필 교과서를 사용했기에 결국 각급 학교 교사들이 전쟁 관련 내용이 들어간 영어 교재를 채택한 것이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이에 대해 에리카와 교수는 "교과서 회사들이 전쟁을 다룬 소재를 많이 넣는 쪽이 교사들에 의해 채택되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라며 "국책의 결과였을 뿐 아니라 이른바 당시의 '민의'도 전쟁 교재를 원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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