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연부터 보디빌딩까지…축제공간된 대륙횡단열차
(하바로프스크<러시아>=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소통과 평화의 메시지와 함께 1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는 단순한 운송수단을 넘어 각종 문화행사와 강연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이 될 전망이다.
친선특급 참가단 190여명을 태운 이 18량짜리 특별 전세열차는 세계 최장의 철도인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따라 수도 모스크바까지 9천288㎞를 달린다.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인 만큼 장시간 운행이 필요한 구간이 많고, 특히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 구간은 62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다.
◇ 잇따른 공연, 체험행사…축제 열린 열차칸
이런 시간을 재능기부를 통해 보다 의미 있게 활용하자는 것이 친선특급에 민간외교사절단으로 합류한 국민 참가자들의 아이디어이다.
식당칸 세 곳 등에서 진행될 문화 이벤트의 첫 순서는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소속 교수들의 문화 강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슬라브·유라시아학회장인 단국대 서상국 교수는 17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열차 내에서 '음식과 술로 보는 러시아 문화'를 주제로 첫 강연을 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4명의 교수가 잇따라 ▲ 모스크바의 역사와 문화 ▲ 21세기 한국 왜 러시아인가 ▲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러시아 한인의 독립투쟁 등을 주제로 강연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48) 손기정 기념재단 사무총장도 '손기정과 국가,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할아버지의 평화주의자적 면모를 소개하고 남북 분단의 현실앞에 바람직한 평화관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코레일 관계자는 "대륙을 이해하고 통일을 위해 우리 세대가 어떠한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내용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각종 문화 공연과 체험행사도 진행된다.
친선특급 참가단은 19박 20일 일정 중 8차례 열차내에서 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마술쇼와 음악회 등 참가자들의 재능기부 공연이 치러진다.
당장 17일 밤에는 마술사 마수리씨의 마술 공연이, 18일 밤에는 '차 한잔하시래요'를 주제로 차 문화 전문가인 권옥진씨의 토크쇼형 전통차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친선특급에 참가한 음악인들의 국악 공연과 보디빌딩 강의 등도 이뤄질 전망이다.
친선특급 예술감독인 김성태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는 16일 "열차내에서만 학술 프로그램 20개와 공연 프로그램 5개가 진행된다"면서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줌으로써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 이번 친선특급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 무릎 맞댄 채 유라시아 젖줄 달린다
친선특급 참가단을 싣고 달리는 열차 자체도 관심거리다.
TSR을 달리는 열차의 객실은 기본적으로 침대차로 구성된다.
친선특급의 경우 전체 18량 중 침대차가 9량이고, '룩소'라고 불리는 2인실과 4인실 '꾸페'가 섞여 있다. 원래 TSR에는 비행기의 이코노미 클래스에 해당하는 6인실이 존재하지만 이번 전세열차에는 편성되지 않았다.
너비 1.7m, 길이 2m 크기의 객실은 중간에 좁은 복도가 있고 양 옆에 침대가 놓인 구조다. 2층 침대가 놓인 4인실은 다소 답답하고, 2인실은 대형거울과 테이블이 놓일 만큼 비교적 여유가 있지만 마주앉은 승객의 무릎이 맞닿을 만큼 좁다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다.
식당칸에서는 팬케이크와 삶은 계란, 샐러드 등 간단한 식사가 제공된다. 며칠씩 몸을 씻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쾌적한 환경이다. 다만 통신 상태는 좋지 못해 대도시 인근을 지날 때를 제외하면 음성 통화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1891년 착공해 1916년 완공된 이 노선은 러시아 치타에서 만주횡단철도(TMR)와, 몽골 울란우데에서 몽골횡단철도(TMGR)와 연결되며, 카자흐스탄 철도 및 중국횡단철도(TCR)가 연계돼 있는 유라시아의 젖줄이다.
혹독한 기후조건과 넓은 영토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전체 여객의 40%와 화물의 85%가 철도로 운반된다.
특이한 부분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준궤(1천435㎜)보다 훨씬 넓은 광궤(1천520㎜)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의 침공을 경험한 러시아 황제가 적국 군인과 전쟁물자의 이동속도를 제한할 목적으로 독자적 궤도 규격을 채택한 결과다.
이로 인해 유럽철도 등 표준궤를 쓰는 철도와 연결할 때는 열차 바퀴를 갈아 끼우는 이른바 '대차교환'을 실시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다만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최근 러시아 철도의 광궤와 표준궤를 모두 달릴 수 있는 궤간가변고속대차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궤도 규격 차이로 인한 철도운송 차질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게 코레일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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