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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 Aoki |
'신모험왕' 히라타 "한일 과거·현재·미래를 보는 작품"
"고 박광정 씨와 논의한 작품 드디어 무대 올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2015년에 한일 두 나라 연극인이 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국내에 일본 연극 유행을 가져온 주인공이자 일본의 유명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53)는 12일 오후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한일 합작으로 새 연극 '신모험왕'을 무대에 올리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희곡집을 번역한 국내 극작가 겸 연출가인 성기웅이 함께 대본을 쓰고 연출한 '신모험왕'은 오는 16~26일 이 극장에서 공연된다.
'신모험왕'은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6월, 터키 이스탄불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함께 머무르게 된 한·일 여행자가 양국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는 광경을 담은 작품이다.
히라타는 1996년 초연한 '모험왕'의 후속편 격인 이 작품에 대해 "일본이 터키에 패하고, 한국과 이탈리아가 접전을 펼치던 바로 그날, 경기가 진행되는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양국 여행자들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한일 관계가 악화된 원인을 조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히라타는 한일 관계가 악화된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일본이 선진국 지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라고 진단했다.
그는 '신모험왕'의 배경을 예로 들면서 "당시 일본인들은 터키에 진 후 한국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에 밀리던 한국이 동점골을 넣은 순간부터 뭔가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됐다. 곧이어 한국이 역전 골을 넣은 그 순간부터 인터넷에선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이 자신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우호적이지만 일본보다 조금이라도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내 한류 열풍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처음 한국 드라마가 유입됐을 때는 일본에서 사라진 전통적인 가족상이나 남녀관계가 그려져 있어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다가 케이팝 등이 유행하며 한류 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자 부담을 느끼고 배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히라타는 "일본은 100여년 이상 아시아 이웃나라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각이 쉽게 나아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1984년 1년간 연세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것을 계기로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로 자리 잡은 그는 현재의 한국에 대해서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낯설어 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1984~1985년 한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보면 지금의 한국은 여러 가지를 이룬 후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 같다"면서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경제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상실감이 더 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두 나라 국민 모두가 이런 현실에 적응 못하고, 낯설어하면서 한일 관계가 좋지 못한 상황에 와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두 나라 정치인들의 무능함이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지금보다는 (양국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모험왕'도 바로 양국의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제작하게 됐다는 게 히라타의 설명이다.
이런 사실을 떠나 애초 그의 오랜 '절친'인 고(故) 박광정 씨와 기획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은 원래 제 절친했던 동지 박광정 씨와 함께 만들려 했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누구보다 강한 우정을 맺고 앞으로 많은 일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었다"면서 "박 씨가 암이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더는 발전시키지 못한 채 아이디어로만 남아있었던 것을 드디어 무대에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2008년 세상을 떠난 박 씨는 히라타의 '도쿄노트'를 국내에 '서울노트'로 번안해 소개한 바 있다. 박 씨는 이 작품을 일컬어 "한국의 그 어떤 극작가보다도 내 이야기를 써준 것 같은 희곡"이라고 말했다.
히라타는 "이제 못하겠구나 싶던 때에 성기웅 씨와 하게 됐다. 최근 3년 새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는데 한일 공동 제작 작품을 만들어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욕이 강하게 들었을 때이기도 했다"며 "2015년에 한일 두나라 연극인이 두 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히라타와 공동 작업한 성기웅 연출은 '서울노트'에 번역자 겸 통역자로 참여한 인연이 있다.
이날 인터뷰를 통역해준 성 연출은 "'모험왕'에 보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가 나온다. 고 박광정 선배가 광주 출신이다.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 겪은 일이어서 그런지 이 이야기를 굉장히 인상깊게 받아들였다. 아마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의 후속편 격인 '신모험왕'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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