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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동 가옥. <<문화유산기금 제공>> |
[부자동네타임즈 이현진 기자] 가옥은 시대와 사회를 담는 그릇이다. 이곳저곳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울 종로구 창덕궁 바로 옆에는 '서양화가의 효시'로 일컬어졌던 춘곡(春谷) 고희동(1886∼1965)의 집이 있다. 지난 2004년 서울의 가옥 가운데 최초로 등록문화재가 됐다.
고희동 가옥이 있는 북촌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저택 몇 채와 한옥 30여호가 전부인 상류층의 주거지였다. 종로 너머 남촌에는 출세하지 못한 양반과 하급 관리가 모여 살았던 데 반해, 북촌에는 왕족이나 고관이 기거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한옥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풍경으로 변모했다.
광화문 인근 수송동에 거주했던 고희동은 1918년 북촌으로 이사했다. 그는 당대의 화가였던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그림을 배웠고, 일본에서도 미술을 공부했다.
고희동은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는 오히려 한국화에 천착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섭렵했던 경험을 살려 독특한 수묵채색화를 발전시켰다.
그가 설계한 가옥은 화풍을 닮아 한옥에 일본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더해졌다. 마당이 넓고 남향인 외양은 영락없는 한옥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느낌이 색다르다. 정면 7칸, 측면 2칸 반의 기다란 안채를 ㄷ자 모양의 사랑채가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전반적으로 ㅁ자집 같지만 모서리가 들어맞지 않고, 내부 공간은 다소 답답해 보인다. 게다가 복도가 길고, 툇마루와 대청은 실내에 설치됐다. 화장실은 당시에 드문 개량형이었다.
고희동은 이 집에서 41년을 지냈다. 주인이 바뀐 뒤에는 수차례 가옥이 변형되고 손상됐다.
2002년에는 집터를 주차장으로 쓰기 위해 헐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시민단체의 강한 반대로 보존됐다. 그리고 3년간의 보수와 복원을 통해 2012년 개방됐다.
가옥 내부에는 춘곡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갖춘 아카이브실과 작품이 걸린 전시실, 아틀리에 등이 있다.
한편 고희동 가옥에서는 내달 9일까지 '춘곡 고희동과 친구들5 - 금강산' 전을 개최한다.
고희동을 비롯해 같은 시기에 활동한 화가인 조석진, 이상범이 그린 금강산 그림과 일제강점기 금강산 관련 자료가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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