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협상엔 의견 갈려…"경제에 충격 필요" vs "정치쇼"
<테헤란 르포> "경제제재로 무용지물, 비자카드 긁게 될 날 올까"
제제 후 극심한 인플레 속 시민들 일상생활 '팍팍'
핵 협상엔 의견 갈려…"경제에 충격 필요" vs "정치쇼"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두바이에서 이륙한 지 2시간 뒤 테헤란에 근접했다는 기내 방송이 나오자 옆자리에 앉았던 20대 이란 여성은 손가방에서 서둘러 히잡(이슬람권 여성이 머리를 가리려고 쓰는 스카프)을 꺼내 머리에 둘렀다.
여기저기 여성 승객들이 너나할 것 없이 히잡을 고쳐 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란에 들어섰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란 테헤란에 출장이나 여행을 가려면 현금을 두둑이 준비하는 게 좋다.
이란 현지에선 현금이 없을 때 세계 어느 곳에서나 대신 쓸 수 있는 비자나 마스터카드가 무용지물인 탓이다.
미국 달러화를 여유 있게 가져가 이란에 도착하고 나서 리얄화로 환전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용카드가 이란에서 쓸모가 없는 까닭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금융 제재 때문이다.
서방의 대(對)이란 제재의 핵심은 이란으로 유입되는 돈줄을 고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제재는 이란과 서방의 정치적 제스처나 '파워게임'에 그치지 않고 이란 서민의 삶에 이렇게 구체적이고 깊숙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란 정부가 자신의 경제 시스템을 '저항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서구의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최대한 자급자족하면서 이에 맞설 수 있다는 비장하면서도 절박한 구호인 셈이다.
"이건 흔히 있는 일인 걸요."
28일(현지시간) 저녁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서 잡아탄 이란코드로의 사만드 택시의 앞 유리창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왜 유리창을 바꾸지 않느냐"고 묻자 택시기사가 내놓은 대답이다.
"어쩌다 유리창이 깨졌느냐"는 질문에 택시기사 아흐메드는 "1년 전에 사고가 났다. 돈이 부족해 바꾸지 못했다"고 답했다.
비단 아흐메드뿐 아니라 이란 국민의 일상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재로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의 주수입원은 원유와 천연가스인데, 서방의 제재는 국제 원유시장에서 이란산 에너지 자원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없도록 했다.
돈이 돌지 않으니 산업생산이 부진하고 이는 국가 재정뿐 아니라 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물자는 부족하고 돈은 융통되지 않다 보니 인플레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치로만 15%를 넘나든다.
이날 저녁 식사를 하러 들렀던 테헤란 시내 레스토랑에서 만난 한 가족은 얼마 전 이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가족의 아버지는 "최근 3년 새 월세가 배로 올랐다"고 했다. 조그만 자동차 부품상을 하는 그는 자신의 수입은 늘지 않고 월세만 치솟자 어쩔 수 없이 테헤란 도심에서 외곽으로 집을 옮겼다고 한다.
제재가 풀리는 사실상 유일한 길인 핵협상에 대해선 의견이 달랐다.
같은 레스토랑에서 만난 회사원 마흐무디 씨는 "협상이 안 되는 것보다 그래도 성사되는 게 경제에 낫지 않겠느냐"면서 "제재가 풀린다고 해서 바로 형편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이란 경제는 무엇인가 충격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현재 상황으론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핵협상은 미국과 이란의 '정치쇼'라는 냉소도 들렸다.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서 만난 알리레자 씨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제재가 풀려서 돈이 이란에 들어오면 부자들이 모두 가져가고 보통 서민들은 지금처럼 여전히 가난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30일이 시한인 핵협상은 테헤란에서 '빅 이벤트'인 것만은 사실인 분위기다.
저마다 그 결과를 저마다 점치면서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곤 했다.
마흐무디 씨는 "복권을 사놓고 기다리는 느낌 아니겠느냐"고 웃으며 반문했다.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서 테헤란 시내 숙소까지 50분 정도 걸린 택시 요금은 무려 81만 리얄.
그러나 미국 달러화로 치면 달랑 27달러다. 이란 화폐 가치가 곤두박질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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