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공동체 실현이 중요"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사제 박민서 신부
청각장애인 성당 건립 추진
"장애인·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공동체 실현이 중요"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의 박민서 신부는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사제다.
2007년 사제 수품을 받은 박 신부는 현재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두 차례 농아인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8일 가톨릭대학교 성신 교정에서 열린 '제4회 한국 가톨릭 농아인의 날' 행사에 참여해 미사를 공동 접전한 박 신부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두 살 때 약물 부작용으로 청력을 잃은 박 신부는 "고교 시절 미술 선생님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자가 됐고, 신부가 되어 가난하고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살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청각장애인으로서 신부가 되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녔던 박 신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수화에 능통했던 정순오 신부(현 한강성당 주임사제)를 만나 정 신부의 지원 아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신부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로지 신부가 될 생각만으로 미국에 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미국 성 요셉 신학교에 입학한 지 1년 만에 퇴출당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뉴욕대교구장이던 오코너 추기경의 지원으로 성 요셉 신학교에 개설됐던 청각장애인 신학 과정이 2000년 5월 폐지됐기 때문입니다. 오코너 추기경이 선종하자 학교 측이 청각장애인 프로그램을 없애버린 것이죠."
사제의 꿈이 꺾이려는 순간이었으나 미국인 농아 사제 토머스 콜린 신부의 도움으로 박 신부는 미국 성 요한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석사과정 공부는 미국의 장애인법에 따라 수화통역자 두 명과 속기사 한 명의 무료봉사를 받았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박 신부는 2007년 아시아에서는 청각장애인 최초로 사제 수품을 받았고, 현재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 사제로 농아 사목을 하면서 청각장애인 성당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제가 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 사제로 부임한 이후 신앙생활을 원하는 청각장애인 신자가 늘었지만,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농아 사목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1957년 서울 돈암동성당에서 시작한 가톨릭농아선교회는 그동안 서울 수유동 툿찡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련원 건물과 명동성당 내 일부 공간 등을 임대해 사용해 왔죠.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청각장애인 성당 건립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박 신부는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2011년부터 천주교 서울대교구 본당 80여 곳을 돌며 후원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독지가들이 보내온 성금과 청각장애인과 각 본당 신자들의 봉헌금에 힘입어 2013년 서울 성동구 마장동 일대에 성당 부지를 마련, 일단 첫 단추는 끼운 상태다.
박 신부는 "농아인들은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이중 장애인이어서 수화통역으로 이뤄지는 미사보다는 사제가 직접 수화로 미사를 집전해주기를 바란다"며 "그래서 수화를 잘하고 농아들의 문화를 잘 아는 사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청각장애 신부는 20여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미국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청각장애인 사제가 모자란 상황이어서 저도 1년에 두 차례 아시아에 있는 농아인 사목지를 방문하는데, 저 같은 청각장애 사제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게 그들의 바램입니다. 이들을 위해 끝까지 사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매 순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장애인을 위한 여러 시설이나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장애 여부를 떠나 모든 신자를 세심히 살피고, 이들이 신앙 안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장애인, 비장애인이 다 함께 기도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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