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류무스 에르뎀 "겨울 아침에 발에서 난 피가 얼더라" 회고
<6·25 65주년> 터키 참전군인 "비참하고 마음아팠다…전쟁은 잔인"
참전협회 무스타파 우준 이스탄불지부장 ""지금 전쟁나도 자원해 갈 것"
듀류무스 에르뎀 "겨울 아침에 발에서 난 피가 얼더라" 회고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내가 재작년 부산 유엔공원에 갔을 때 질문 하나 받았는데, 지금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그래서 또 자원해서 가겠다고 대답했지요"
지난 18일 터키 참전협회 이스탄불지부에서 만난 무스타파 함디 우준(86) 지부장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도 총 쏠 수 있어요"라며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해보였다.
터키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는 우준 씨가 재킷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편지봉투를 꺼내 보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는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부산 유엔공원과 서울 등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65년 전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와 완전히 달라졌더라"라며 폐허에서 번듯해진 한국을 조국의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영웅처럼 존경하고 환영해줬다며 서툰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는 한국에 28일 동안 배를 타고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었는데 처음 본 장면들이 너무 비참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이들과 여성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것처럼 보였어, 우리는 도시락을 받았는데 그들을 보고서는 밥이 넘어가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했다.
그는 참전하기 전 터키에서 전후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헐벗은 모습에 더 마음이 아팠다며 "전쟁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잔인하다'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북쪽과 남쪽으로 갈려서 싸우고 부모는 죽고 아이들은 고아로 남겨지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통역을 하던 터키 여대생 부세 씨가 눈물을 훔치자 옆에 앉아있던 다른 참전용사 듀류무스 에르뎀(83)씨가 "아리랑,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말을 시작했다.
포병이었다는 에르뎀 씨는 전투를 치르던 곳이 다 숲이어서 방향도 잘 모르고 북한군인지 한국군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며 "너무 힘든 전쟁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한국전에서 겨울을 두 번 났는데 터키보다 추워서 힘들었다"며 "겨울에 아침에 나가면 발이 칼에 찔려도 피가 얼더라"라고 덧붙였다.
에르뎀 씨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일화도 들려줬다.
그는 "하루는 4시간 동안 폭탄 250발을 만들고 힘들어서 친구한테 5분만 자겠다고 하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젊은이가 '일어나세요, 여기는 적이 공격할 곳이에요'라고 말하기에 놀라서 일어나 스무 걸음 정도 걸어갔는데 잠들었던 곳에 폭탄이 떨어지더라"라고 말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국가별 연인원 병력은 터키가 1만4천936명으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으며, 전사자 수는 765명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다.
또 터키군의 연인원 대비 전사자 비율은 5%로 미국과 영국의 2배 수준이다.
터키 참전용사들은 전사자 비율이 높은 것은 다른 국가군보다 전선 앞에 서고 후퇴할 줄 모르는 용맹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터키 국방부 산하 참전협회 이스탄불지부에는 80대의 노병들이 지금도 매주 목요일이면 협회에 모여 전우애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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