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넘겨 다시 뭉친 연대 83학번들, 연극으로 인생 말하다
동기생 극단 '상봉리', 첫 작품 '다시 만날 때까지' 공연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자, 최루탄 꽝! 숨소리 더 거칠게! 선생님, 그쪽으로 너무 가지 마시고 좀 있다가 조금씩 이동하세요… 아, 그리 가면 어떡해요." "아하하, 진짜 미안해!"
16일 저녁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 CY씨어터. 중년 남녀 7명이 연출자 지시에 따라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연극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배우들은 연세대 83학번들로 이뤄진 극단 '상봉리' 단원들이다. 다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연배로, 이달 20일 막 올리는 연극 '다시 만날 때까지'에 출연한다. 작년 8월 극단 설립 이후 1년간 준비한 첫 작품이다.
극단 상봉리는 2012년 5월 연세대 83학번들이 졸업 25주년을 맞아 '상봉'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학교 다닐 때 같은 과도,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지만 83학번이라는 하나의 공통점에서 뭉쳤다.
이들은 어느덧 쉰이 넘은 나이에 뭔가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싶어 극단을 꾸리는 '사고'를 쳤다.
20여명에 이르는 단원들은 대부분 연극을 해본 경험이 없다. 졸업 이후에는 건축가, 교사, 공무원, 기업인, 작곡가 등 각자 분야에서 생활인으로 바쁘게 살아왔다. 지금도 생업에 종사하며 시간을 쪼개 연습에 참여하고 있다.
극단 총무 겸 배우 이영우(법대 83학번·벤처사업가)씨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을 꼭 가보고 싶어 연극을 선택했다"며 "이렇게 감정 소모가 큰 작업은 처음이라 힘도 들지만, 우리 83학번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대에서 펼쳐보일 생각을 하니 즐겁다"고 말했다.
동문들이 모인 극단이라고 해서 자신들끼리 즐길 요량으로 작품을 적당히 준비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정색을 한다.
이 연극은 '노란봉투', '모의법정' 등 사회참여적 작품들로 주목받은 극단 해인의 이양구 대표가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제작 전반을 극단 해인이 담당하고 상봉리 소속 배우들이 출연하는 형식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작품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복고 열풍을 불러온 영화 '건축학개론' 등 83학번들의 기억을 묶어주는 예술작품들을 매개로 그들의 과거·현재·미래를 무대 위에 풀어놓는다.
연극 경험이 없는 단원이 대부분이지만, 올해 초부터 매주 대본 읽기를 연습하고 현직 배우를 불러 연기 수업까지 받은 터라 짧은 기간 상당한 수준까지 기본기를 끌어올렸다고 극단은 자부한다.
배우 모두 생업이 있는 생활인인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직업 배우들은 시도하지 못하는 연극적 실험도 선보인다. 배우들이 대본 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과 생각을 '날것'으로 쏟아내는 장면은 다른 연극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묘미를 선사해 준다.
이양구 대표는 "83학번들이 무대에서 회사 일이나 자녀 양육 등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서로 쏟아내는 장면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이는 대본에 쓸 수 없는, 말 그대로 '날 수다'여서 연습 때마다 다르고 실제 공연에서 어떤 모습이 될지도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연은 20일 오후 3시·7시, 21일 오후 3시 CY씨어터에서 3차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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