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합니까> ②겹치기 출연, 다양성 파괴(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6-17 08: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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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합니까> ②겹치기 출연, 다양성 파괴(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쪽은 연기자의 세계에도 시장논리가 작용한다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한편의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도 화려한 진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방송가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겹치기 출연은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특히 '그 나물에 그 밥'이 이어질 경우 드라마업계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드라마 겹치기 출연을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뜻밖에 문제가 크다"고 꼬집었다.



◇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가끔 캐릭터가 헛갈리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똑같은 배우가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드라마에 캐스팅되어 있을 때가 그렇다. 이른바 '겹치기 출연'이다. 심지어는 드라마를 보다 채널을 돌렸는데 (같은 시간) 다른 드라마에도 같은 배우가 버젓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시청자들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드라마 시청은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통해 이뤄지는 간접경험이다. 그러니 '겹치기 출연'이 가져오는 몰입의 방해나 혼동은 드라마 시청을 상당 부분 저해하는 일이다. 그나마 캐릭터가 다르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네 드라마에서 겹치기 출연을 하는 대부분의 연기자들은 중견으로, 여러 드라마에서 비슷비슷한 역할들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MBC의 주말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한진희 씨 같은 경우에 나오는 드라마마다 거의 비슷한 역할을 보여준다. 주로 가부장적인 회장 역할이 많은데 심한 경우에는 대사까지 거의 패턴화되어 있다. "이게 도대체 뭐야?!"하고 그가 호통을 치는 장면은 그래서 그가 출연하는 여러 드라마들 속에서 거의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변별력이 생기기 어려운 이유다.

'겹치기 출연'이 심한 경우에는 심지어 배우의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까지 똑같아 시청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도 있다. 이건 사실 배우들 스스로 어느 정도는 시청자를 배려해야 하는 일이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네 드라마 제작 여건 속에서 한 드라마를 찍고 바로 다른 드라마를 찍는 경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겹치기 출연의 진짜 폐해는 드라마 생태계의 다양성을 고사시켜 결국은 드라마업계 전체를 앙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누군가 겹치기를 한다는 얘기는 그 자리에 들어갈 다른 배우들이 밀려난다는 얘기와 같다. 요즘은 중견들도 얼마든지 새로운 배우들이 많다. 연극계에서 오래도록 공력을 쌓아온 중견들은 드라마에서는 아예 신인이나 다름없다. 이들에게 어떤 기회를 마련해 준다면 드라마는 그만큼 풍성해질 수 있다.

겹치기 출연은 작가들의 상상력마저 고착시킨다. 작가와의 관계 때문에 중견 배우들이 연거푸 출연하는 경우에 그 역할은 거의 고정된 경우가 많다. 새로운 캐릭터를 창출하기보다는 있는 캐릭터를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건 작가도, 배우도, 나아가 시청자들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별로 주목되는 주인공의 자리도 아닌데 무슨 큰 문제가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주인공만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을 받쳐주는 중견들이 그 드라마의 진짜 주제의식과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비슷비슷한 중견들의 겹치기 출연이란 다른 의미로 말하면 그저 그런 비슷비슷한 주제의식과 메시지들이 나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래도 '단순한 겹치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늘 보던 배우들만 나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이, 상당히 많은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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