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 "아직도 마음에는 아홉살 아이가 살아"
동아시아문학포럼 참석…"여전히 일상이 익숙하지 않아!"
(베이징=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51)는 감각적이고 청아한 문체로 연애 소설 부문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로 한국에서도 열풍을 일으켰고 '반짝반짝 빛나는', '도쿄타워',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등 일상의 경험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로 대중소설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어느덧 데뷔 30년이 지나 50대가 된 그를 지난 15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국제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열린 제3회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석해 '문학과 가정, 사회'를 주제로 발표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두터운 팬층을 지닌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저 이야기를 쓰는 게 좋아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며 "소설을 쓸 때 뭔가를 꼭 지키겠다는 원칙은 없다"고 말했다.
"포럼에서 한국 작가와 대화를 했는데, 그가 한국 소설은 오랫동안 어떤 굵직한 주제 의식이 있었고, 세상의 흐름에 따라 문학의 역할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테마가 없어도 문학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요. 큰 주제가 없이도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움직이는 작품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독자를 의식해 소설이 쉬워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며, 읽기에 다소 어렵더라도 좋은 작품을 독자에게 끊임없이 소개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저도 처음에는 무명이었지만 제 작품을 믿고 출간해준 출판사와 그 책을 놓아준 서점이 있었고, 책을 우연히 읽고 주변에 소개해준 독자가 있었다"며 "어렵고 안 팔릴 것 같은 책이라도 편집자나 출판사, 매스컴이 좋은 작품을 계속 독자에게 전달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쿠니는 다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긴 공백 없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한국에 소개된 번역서만 30권이 넘는다.
그는 "아직도 모든 사물이나 일상에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며 "뭔가를 쓰려고 생각하기보다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놀랍고 신선한 것들이 눈에 띄고, 그게 마음속에서 갱신된다"고 설명했다.
에쿠니는 "제 안에는 아직도 아홉 살의 아이가 있고, 아홉 살 아이가 세상을 바라볼 때의 놀라움이나 발견이 항상 있다"며 "나이를 먹으면서 지식인이 됐고 술 마시고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그때 갖고 있던 감각이나 시각이 변함이 없다"고 털어놨다.
주로 부드러운 사랑 이야기를 담았던 이전 작품과 달리 지난해 한국에 번역 출간된 장편 '등 뒤의 기억'에서는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과 쓸쓸함이 두드러졌다.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에쿠니는 "'등 뒤의 기억'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에 썼다"며 "사람이 죽었을 때도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자부심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 작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에쿠니는 "최근 제 작품 등장인물의 나이가 조금 많아져서 차기작에는 등장인물의 나이를 다시 낮추려고 한다"며 "다음 작품으로는 10대 여자 아이 둘이서 여행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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