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등 연계한 단기 '떴다방' 시도 의혹도
[단독] 고질적인 출판계 표절 치부 다시 수면 위로
크눌프, 헤세 고전 출간하며 기존 판본 짜깁기 의혹 휩싸여
드라마 등 연계한 단기 '떴다방' 시도 의혹도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힘들여 고전 번역을 해놓으면 곧 달라붙어 윤색만 해서 염가로 내놓으니 공들여 번역할 맛이 나겠습니까?"
11일 출판계에선 헤르만 헤세의 고전인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의 번역 표절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곪아 터질 게 터졌다"는 게 중론이다.
표절 대상이 된 출판사들은 이번엔 참을 수 없다며 강경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표절 의혹을 공식 제기한 문학동네 측은 번역 표절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판매금지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역시 표절 대상이 된 민음사 측은 표절 의혹이 짙다고 보고 내부 검토를 진행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표절 의혹을 받게 된 크눌프는 지난 5월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권당 9천원, 두 권 세트에 1만8천원 정가에 출간했으며, 역자는 두 권 모두 이재준씨다. 크눌프 출판은 전에 출간 이력이나 납본실적이 없으며, 지난 4월 24일 등록된 신생 출판사다.
그러나 크눌프는 첫 출간부터 상당한 마케팅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게 출판계 시각이다. 실제로 드라마에 책을 등장시키는 간접광고(PPL)와 주요 서점과 인터넷 검색시 상위에 링크되도록 하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을 쏟아부었으리란 추정이다.
책의 내용은 부실하고 부도덕한 짜깁기와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반면, 광고와 마케팅 만큼은 업계 최고 수준의 비용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 결과 세트 도서는 예스24의 주간(6.4~11) 베스트셀러 집계 6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의 취지는 마케팅 대신 책의 품질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를 정착시키자는 것이었지만, 이번 사례는 그 같은 선순환 구조 정착이 요원한 현실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물론 원소스멀티유즈(OSMU) 추세 등에 기반해 원작과 소품도 함께 뜨는 현상에 적응하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하게 이에 집중하면서 책의 내용은 뒷전인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은 출판계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출판계 관계자는 "단순한 판매 수량만 갖고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목록, 돈만 지불하면 언제든 검색 순위 첫 번째 자리와 서점 고객의 눈길을 끄는 판매대에 오를 수 있는 현실, 또 그 같은 책들이 실제로 내용과 상관없이 잘 팔려나간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우리 시대 출판의 초라한 현주소"라고 씁쓸해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표절에 관대한 우리 문화를 재점검해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이름만 대면 알 대표적인 문고 출판사부터 타 출판사가 어렵게 공들인 작품들을 베껴내놓고 하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해왔다"며 "특정 출판사의 경우 고전 문고 시리즈의 역자가 단 한 명뿐이란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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